400년 간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 30년간의 내전. 앙골라는 이런 아픔에서 벗어난 지 불과 10년 밖에 되지 않았다. 오랜 내전의 여운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 앙골라는 세계에서 가장 지뢰가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누군가는 앙골라를 악마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 장기간 지속되는 극심한 가뭄으로 앙골라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지난 8월 우리가 찾은 앙골라 남부 윌라(Huila) 주는 가뭄의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곳 중 하나였다.

2년 간 단 한 방울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앙골라 정부 발표에 따르면, 2년간 지속된 가뭄으로 남부 앙골라에서는 150만 명이 심각한 식량위기에 직면해 있다. 가뭄으로 강수량은 80%나 감소했고, 당연히 농작물 수확량도 동일하게 감소했다. 말라버린 땅에서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식료품 가격은 400%나 올라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은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현재 남부 앙골라에서는 인구의 60%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으며, 최소 50만 명의 5세 미만 아이들이 급성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던 Gambos지역은 윌라 주 내에서도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곳으로, 지난 2년 간 단 한 방울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나무는 강이 말라 모래 강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마음 편히 구할 수 가 없다.

아프리카 서남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앙골라. 세계에서 가장 지뢰가 많은 나라, 오랜 내전의 여운과 장기간 계속되고 있는 가뭄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아프리카 서남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앙골라. 세계에서 가장 지뢰가 많은 나라, 오랜 내전의 여운과 장기간 계속되고 있는 가뭄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한줌의 옥수수 가루, 열한가족의 마지막 식량

빅토리아를 만난 것은 시장이었다. 할머니 품에 안겨있는 3살 빅토리아. 천으로 꽁꽁 싼 빅토리아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 할머니는 한 겹씩 천을 걷어냈다. 비쩍 마른 몸.

“언제 마지막으로 밥을 먹였나요?” 대뜸 이 질문부터 했다. 대체 얼마나 못 먹었기에 이렇게 안타까운 상태가 되었을까. 잠시 머뭇거리던 할머니는 어제 아침 약간의 옥수수 죽을 먹인 것이 전부라고 대답했다. 마치 그 것이 할머니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듯한 표정이어서 질문을 던진 나는 미안해졌다.

기운이 없는 3살 빅토리아는 하루종일 할머니 품에 안겨있는다.

기운이 없는 3살 빅토리아는 하루종일 할머니 품에 안겨있는다.

할머니는 빅토리아 외에도 7명의 손자, 손녀들 3명의 딸들과 손바닥만한 집에서 함께 산다. 그런데 이 열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은 오롯이 할머니의 책임이다.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온 할머니는 최근 가뭄으로 농사일을 놓았다. 대신 인근 공사장에 모래를 나르는 일을 한다. 하루 1.5달러. 11명 가족의 하루가 이 돈에 달려있다. 우리가 함께 둘러본 집안에 남은 곡식이라곤 한 줌에 잡힐 만큼 적은 양의 옥수수 가루 뿐. 빅토리아를 품에 안은 채 자루에 남은 곡식을 보여주던 할머니가 이내 눈물을 쏟는다. “이 곡식을 다 먹고 나면, 우리 가족의 내일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열한 가족에게 남은 마지막 식량, 한 줌의 옥수수 가루

열한 가족에게 남은 마지막 식량, 한 줌의 옥수수 가루

열한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빅토리아의 집

열한 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빅토리아의 집

탄생과 동시에 생존과 죽음 사이에 놓이다.

어디를 가도 집집마다 사정은 비슷했다. 다른 마을로 이동하던 중 우리는 길 위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먼지 날리는 흙바닥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 다가가보니,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품에 안긴 5개월 된 남자아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말라있었다. 한참 젖살이 올라있어야 할 아이는 바짝 말라 마치 노인의 피부처럼 주름져 있었다. 대가뭄 중에 태어난 아이였다. 농사를 짓던 남편은 쟁기를 내려놓고 일자리를 찾아 수도로 떠났다. 혼자 남은 부인은 더 이상 먹을 것은 없고 음식을 구할 곳도 없었다.

5개월 된 로드리게스, 대가뭄중에 태어난 아이는 죽음의 문턱 앞에 놓여있다.

5개월 된 로드리게스, 대가뭄중에 태어난 아이는 죽음의 문턱 앞에 놓여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제대로 먹지 못한 로드리게스를 보건소에 대리고 가봤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보건소에는 아이를 위한 약이 없다고 했다. 도시의 큰 병원에 가라고 했지만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에 갈 방법이 없었다. 엄마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친정 엄마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사정 뻔히 아는 친정집이라고 별다를 리 없지만, 그래도 얼마간은 뭐라도 먹일 수 있기를 바라며 먼 길 마다 않고 가던 중에 우리를 만난 것이었다. 엄마의 마른 가슴을 입에 물고 있는 로드리게스가 작은 주먹으로 엄마의 가슴을 잡는다. 무엇을 향한 집념인지 한없이 작고 마르기만 한 아이의 눈빛에서 무언가 강렬한 것이 느껴진다. 이제 고작 5개월 된 아이의 눈에서 내가 읽은 것을 분명 생존에 대한 강렬한 의지였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본능. 아무것도 모르는 로드리게스가 주먹을 꽉 쥐는 동안 엄마는 한숨을 내짓는다. 가뭄이 올해는 끝이 날까?

로드리게스의 팔 둘레는 겨우 8cm로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

로드리게스의 팔 둘레는 겨우 8cm로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

로드리게스의 발목, 일반 성인여성의 엄지손가락 만큼 가늘다.

로드리게스의 발목, 일반 성인여성의 엄지손가락 만큼 가늘다.

대가뭄의 현장,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

월드비전은 1989년부터 앙골라에 사업장을 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가뭄으로 인한 영양실조 문제가 시급했기에, 의료기관과 정부와의 협력으로 아동들의 영양, 보건에 집중하고 있다.

앙골라 월드비전의 책임자인 조나단은 말한다. “당장 영양실조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한 문제 해결이 시급하죠. 무엇보다 가족들이, 이 곳의 사람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이 땅을 되살리는 게 우리의 역할인 것 같아요. 주민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장 근본적인 식수, 영양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 뜨겁고 건조한 모래바람. 하지만 오늘도 아이들을 위하여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이 앙골라에 있다.

글+사진. 김보미 미디어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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