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이들에게 비밀이 없어요.”
시작은 “안녕하세요. 후원자님. 감사합니다.”처럼 평범했다. 가나에서 한국까지의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었다. 장지은 후원자도 별 내용 없는 첫 편지를 쓰는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어색하게 시작된 만남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600번째. 이제 10~15분이면 편지를 쓴다. “저는 아이들에게 비밀이 없어요.” 이젠 서로의 사소한 일상을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2011년 가나의 아비바와 처음 인연을 맺은 후로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장지은 후원자의 후원아동은 여섯 명이 되었다.
“저는 볼 수 없지만 표정부터 달라졌데요.”
“첫 편지로 제 소개를 하면서 시각장애인이라는 걸 말해줘요. 서로를 잘 이해하려면 아이들이 제 상황을 알아야 하니까요.” 몽골 후원아동 푸렙수른은 이런 장지은 후원자를 위해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종이접기 선물이나 나무로 만든 왕관을 보내오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나눔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가나 소녀 아비바는 그녀를 “이 세상 하나뿐인 저만의 후원자님”이라고 부르며 나중에 크면 그녀의 손을 잡고 가고 싶은 곳 어디든 함께 걷고 싶다고 말한다. 요즘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면 친구들이 말한다. “어머 이 아이 이제 활짝 웃는다.” 처음의 어색했던 표정은 이제 없다.
우리는 서로 기대는 사이
그녀가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친밀한 후원자는 아니었다. 2008년 고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의 후원아동 이야기를 듣고 부담 없이 후원을 시작했었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나도 한 번 해볼까? 다른 사람들도 하는데 뭐.” 하지만 성급한 판단으로 시작한 후원은 얼마 가지 못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왜 그때는 알지 못했는지. 후원중단을 요청하던 날 잠들기 전까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그래서 2011년 다시 후원을 시작할 때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서로를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삶을 기대고 위로받는 사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어요.
“에스테파니는 엘살바도르 아이에요. 아직 어려서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아요. 6개월에 저를 만났는데 이제 20개월이 되었어요. 완전 아기였는데 이제 키가 72cm가 넘었어요. 친구들이 저랑 많이 닮았데요. 걸어 다니기도 하고 가족들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데 커가는 게 너무 신기해요. 앞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한 일들이 더 많이 생기겠죠?”
우간다 후원아동 소피는 장지은 후원자를 자매라고 부르며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늘 장지은 후원자가 들려준 이야기들을 자세히 언급하며 감동적인 답장을 보내준다. “대단한 사람들만 우편으로 편지를 받는다는 친구의 말에 제가 특권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졌어요.”라는 소피의 일곱 번째 편지를 읽었을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소피가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 나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한 아이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응원하는 아이들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행복한 일이다. 아이들의 정성 가득한 편지를 읽을 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이들에게 8통의 편지를 받고 날아갈 듯 기뻤던 어느 날, 그녀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아이들 덕분에 제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거든요. 생활도 변했어요. 예전엔 향수를 모으는 취미도 있었어요. 뭔가를 사고 쓰는 게 모두 저를 위한 거였는데 이젠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요. 조금 더 아끼면 아이들에게 스티커 선물을 보낼 수 있는데 하고 말이죠.”
말 대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변화
아직은 그녀의 후원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거 한다고 정말 뭐가 달라지니?” “우리나라에도 굶는 아이들이 있는데 굳이.” “차라리 그 돈으로 유럽여행이나 가자.” 처음엔 그런 말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제 말 대신 아이들의 편지와 사진을 보여준다. 그 안에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과 변화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 주변에도 자연스럽게 후원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우리는 누구나 도움을 받고 살잖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저는 남들보다 좀 더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그래서 제가 받은 것을 나눠주고 싶었어요.” 올해 성탄 카드도 10월에 미리 다 보냈다. “혹시 늦게 도착하면 안 되잖아요.” 오늘도 장지은 후원자와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하늘을 날아 서로에게 향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