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아이들(Kids for Peace) 사업
코소보. 알바니아 북쪽에 위치한 국가로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했다. 1998년 신유고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했던 알바니아계의 코소보 주민들은 이것을 저지하려고 했던 세르비아계 정부군으로부터 무차별하게 학살을 당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죽은 알바니아계 코소보인은 10,000명이 넘는다. 이들과 함께 살아가던 소수민족인 로마족, 이집트족 사람들은 이 전쟁 중에 심하게 차별받고 이유도 없이 죽어야했다. 코소보에는 아직 결연사업이 진행되고 있지 않지만 “평화를 위한 아이들” (Kids for Peace)이라는 평화구축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라호벡 마을,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주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
첫 번째로 전쟁 중에 접전 지역이었던 라호벡(Rahovec) 마을을 방문했다. 보통의 마을들은 한 민족만 모여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 마을은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가 같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시골 동네 같은 마을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면서 아직도 보이지 않는 벽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군부대에서 볼 수 있는 철망이 집 담벼락마다 쳐져 있었고 골목 중간에도 철망이 있어 언제든지 바리게이트로 쓰일 수 있었다. 언제 공격을 받지 모르는 두려움이 주민들 마음속에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라호벡에서 한 세르비아계 가정을 방문했다. 4명의 자녀가 있는 이 가족은 전쟁 중에는 세르비아로 피난을 갔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살던 집도 없어졌고 아버지의 직장도 없어졌다. 지금은 임대주택에서 살면서 월 100유로(약 15만 5천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주변 집들에도 전쟁 이후 돌아오지 않은 가정이 많아 열 집 건너 한 집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첫째 딸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라고 했다. 난 그때서야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알바니아계가 살고 있는 곳으로 절대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집에서 나와 그 집 아이들과 같이 걸어 나오는데 어느 골목에 이르자 막내 딸이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으며 몸을 돌렸다. 알바니아계가 살고 있는 마을의 서쪽으로 온 것이었다. 검문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10분을 더 걸어서 알바니아계 가정을 방문했다. 방금 전에 방문했던 집과는 다를 것이 없이 열악한 집이었다.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기 위해 깔아놓은 낡은 매트, 그 옆에 어지럽게 놓인 식기구, 쌓아올린 축축한 이불… 그것이 이 집 살림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고 아들도 가끔씩 학교를 빠지고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한다고 했다. 세르비아 군인이 총구멍을 머리 앞에서 겨누던 상황을 회상하던 어머니는 조용히 얘기했다. “전쟁 전에도 잃을 것이 많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잃었어요.”
지코바 마을, 쓰레기를 줍는 로마족 아이들
소수민족인 로마족이 살고 지코바 (Gjakova)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로 들어설 때부터 타이어 타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차에서 내려서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쓰레기장 옆의 판자촌이었다. 이곳에는 170가정이 평균 5명의 자녀를 두고 살고 있다. 판자촌에 살고 있는 700명 주민들의 생계수단은 쓰레기 수거하는 일이고 하루 2유로(약 3000원)를 번다고 했다.
10살쯤 되어 보이는 3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손에는 쓰레기 줍기 위한 꼬챙이를 들고 있었고, 두 아이는 맨발로 한 아이는 찢어진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아이들은 갑자기 난폭해지면서 다투기 시작했다. 전쟁 중에 로마족은 상대편을 지원해주었다는 오해로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모두에게 외면당했고 이유 없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이후의 이들의 삶은 누구보다도 더 취약하고 힘들었다.
평화롭게 살던 한 마을에서 같이 살던 이웃에게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로 어느 날 총을 겨누고, 피난길에 가족을 잃고 소식을 다시 듣지 못한 사람들… 아직도 전쟁의 공포가 완연하게 남아있는 코소보. 하지만 난 이곳에 희망을 발견했다. 분노와 적개심을 뒤로 하고 다시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가 화해하고 어울려 같이 살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아이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평화를 위한 아이들(Kids for Peace) 사업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우리 마을은 바꿀 수 있어요.”
“평화를 위한 아이들” (Kids for Peace) 사업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고 8개로 시작했던 클럽은 이제 16개가 되어 올해 약 400명의 아동들이 참여하고 있다. 월드비전은 전쟁을 경험한 아동들에게 어른들이 갖고 있는 편견과 적개심이 세습되지 않도록 비폭력적으로 충돌을 해결하는 방법, 폭력의 문제점 등을 워크샵, 게임, 연극을 통해서 알려준다. 아동들은 클럽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는데 알바니아계, 세르비아계 아동들로만 이루어진 클럽도 있지만 연합 클럽도 있다.
라호벡 마을에서 난 알바니아계 아동으로 이루어진 “평화의 별”이라는 이름의 아동클럽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클럽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우게 되었는지 열정적으로 말해주었다. 그 중에서 내 머리 속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신앙과 민족의 차이가 우리를 세르비아 친구들과 다르게 만들지 않아요.”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지만 우리 마을은 바꿀 수 있어요.”
“저는 4살 때 아버지를 잃었어요. 세르비아계 군인이 아버지를 죽였어요. 하지만 저는 세르비아 친구들을 싫어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아무것도 잘 못 한 것이 없거든요. 세르비아 친구들은 우리 동네로 놀러오지 않지만 저는 지난주에도 그 동네로 축구하러 갔었어요.”
말하는 아이들의 눈은 확신에 차 있었고 조금도 수줍어하지 않았다. 부모가 수차례 들려주었을 가슴 아픈 이야기도, 아이들이 실제로 목격한 전쟁도 이 아이들에게는 상처겠지만 아이들은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아직도 전쟁의 슬픔과 공포가 남아있는 코소보에 이 아이들이 통해서 화해가 시작되고 훗날 아이들이 컸을 때는 평화의 소식이 코소보에서 들려오게 되리라 믿는다. (“평화를 위한 아이들”사업은 올해부터 한국 월드비전도 함께 지원을 시작한다.)
글/사진. 월드비전 국제개발팀 이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