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 생일 2001년 2월 10일
아쉬네피라는 한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이름의 뜻은 ‘승리자‘.
‘승리자’가 싸움에 나서야만 이길 수 있듯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삶의 싸움터에 나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은 항상 아이에게 불리했습니다.
아쉬네피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남들처럼 따뜻한 집에서 자랄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남들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소변통제가 안 됐습니다.
몸에서 나는 악취는 엄마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할머니 역시 아이를 감당치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만나보지도 못했고, 어머니는 자신을 버리고, 할머니는 자기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건강문제로 신음하는 아쉬네피는 어린 나이에 절망을 맛봐야 했습니다.
또 한번의 절망은 학교에 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건강문제가 또 한번 아이를 잡았습니다.
결국 할머니도 포기한 아쉬네피는 이모집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모집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모도, 할머니도 감당치 못한 아이를 이모라 해서 별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아쉬네피는 집을 뛰쳐나와 고향의 버스 정류장에서 지냈습니다. 낮에는 식당에서 버린 음식을 주워 먹었고, 밤에는 낮에 데워진 버스 지붕에서 잤습니다.
이름은 ‘승리자‘였지만, 아쉬네피는 스스로를 ‘패배자‘라 생각했습니다.
#2. 두 번째 생일 2008년 2월 4일
아쉬네피는 이 날을 새로 태어난 날로 기억했습니다.
이 날은 바로 아쉬네피가 월드비전 에티오피아의 결연아동으로 등록된 날입니다.
아이는 이날 버스 정류장의 밤 추위를 도저히 견디지 못해, 식당에 몰래 들어와 자려 했습니다. 그러다 한 아저씨에게 들켰습니다. 겁이 난 아이는 도망치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월드비전의 자원봉사자였던 아저씨가 아이를 결연 아동으로 등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박민진 후원자님의 후원아동이 되었습니다.
#3. 세 번째 생일 2008년 5월 5일
아쉬네피는 세 번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자신을 절망에 빠뜨렸던, 긴 방황을 하게 했던 건강문제를 떨쳐낸 날입니다.
월드비전은 결연아동들의 건강과 일상을 돌봅니다. 아쉬네피를 치료하기 위해 지역의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는 아이를 치료할 수 없다며, 더 큰 병원으로 가라했습니다. 그 병원에서도 치료 할 수 없다며, 수도로 가라 했습니다.
수도에 있는 병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아이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큰 병원(티쿠르 안베사)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2008년 5월 5일. 아이의 담낭에 있던 돌 들이 제거됐습니다.
이 날은 한국의 어린이 날입니다. 한국후원자님도 몰랐던 가장 큰 선물이 아이에게 전해진 겁니다.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아쉬네피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또 건강한 모습으로 이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모는 아쉬네피에게 미안한 마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었습니다. 할머니도 울며 아이를 반겼습니다.
그리고 또 건강한 모습으로 학교에 갑니다. 그곳에서 아쉬네피는 새로운 꿈을 가졌습니다.
의사가 되는 꿈 말입니다.
“아파 봤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아픈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승리자 아쉬네피.
아이는 자신 이름의 원래 의미를 하나씩 되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맡기고 집을 나간 어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승리자가 되어가고 있는 아쉬네피에게 앞으로 좋은 일들이 더욱 가득하리라 믿기에, 아쉬네피는 오늘도 웃습니다.
#에네모레나 에너 사업장 자세히 보기
사업명 | 에네모레나 에너 지역개발사업장 (Enemorena Ener AD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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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기간 | 2006 ~ 2020(총 15년) |
사업지역 | 수도 아디스아바바로부터 198km 떨어져 있는 지역 |
총 수혜자 수 | 약 224,981명 |
글. 홍보팀 최민석 간사. 사진 유별남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