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희귀병에 걸린 지애(가명, 11세)를 찾아간 날은 유난히 햇볕이 좋았다. 이틀 전 병원에서 퇴원한 아이는 밖에서의 세균감염을 우려해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 활발하고 적극적인 지애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온 것은 지난 여름방학. 몸에 힘이 없어 혼자 방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엄마 임미자(가명, 45세)씨와 다른 가족은 아이가 심하게 더위를 먹었다고만 생각했다.
임미자씨는 아침 일찍 식당에 나가 일하고 피곤함에 지친 몸으로 저녁 늦게 귀가해서도 시어머니와 지병이 있는 남편의 건강을 챙기고, 네 딸을 억척스럽게 건사했다. 어른스러운 지애는 생활에 지친 엄마를 걱정시키기 싫어 아픈 내색을 하지 않았다.
명랑하고 씩씩한 지애를 아프게 하는 희귀병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 좀 해보세요.”
지난 2009년 8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학교에서 실시한 혈액검사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임미자씨는 놀란 가슴을 누르며 서둘러 종합병원으로 지애를 데려갔다. 조직검사 결과 백혈병의 전 단계 골수이형성증후군이었다. 골수의 이상증세로 빈혈은 물론 몸의 저항력이 떨어지는 소아기 희귀병, 막내의 병명에 모여 앉은 가족 모두 말을 잃었다.
저학년부터 한 번씩 심하게 체하고, 코피가 나면 지혈이 안 돼 119에 실려 갔던 아이, 조금만 부딪혀도 피멍이 들던 약한 피부.
돌이켜보면 모두 몸의 이상을 알리는 증상이었는데, 생활에 지쳐 어느 누구 하나 그 증상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형편 어려워 항암치료 대신 피주사…
의사는 항암치료를 시작하자고 했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임미자씨가 지애의 항암치료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식당을 그만두고 병원에서 지내야했다. 당장 생활비와 지병으로 누워있는 남편과 노모가 문제였다.
지애의 적혈구수치(RBC)가 평균보다 현저하게 낮아 우선 20일간 치료를 하고, 1주일 마다 피주사를 맞으며 수치를 맞췄다. 임미자씨는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밤마다 베갯잇을 눈물로 적셨다.
건축업을 하던 남편의 부채로 다달이 이자만 20만 원씩 나갔다. 임미자씨는 잠을 줄여 일했지만 형편은 조금도 좋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임미자씨 남편은 12월 지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가족 모두 고통스러웠지만 슬픔에 잠길 여유가 없었다. 임미자씨는 식당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지애의 치료에 매달렸다.
100% 들어맞는 골수 발견
봄부터 매달 큰딸의 100만 원 남짓 월급으로 쌀과 병원비, 이자를 해결하고 있다. 비록 풍족한 살림은 아니지만, 투정 없이 제 몫의 일을 조용히 해내는 딸들을 바라보는 임미자씨의 눈이 고마움으로 촉촉하다.
가족이 지애에게 줄 수 있는 골수를 희망하며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검사를 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2번의 항암치료 과정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힘들 법도 한데, 지애는 아픈 내색 없이 종달새처럼 병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얼마 후, 지애와 똑같은 골수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폐의 곰팡이 균 침투로 고열에 시달려 51일간 입원했던 지애는, 7월에 있을 골수이식 수술을 앞두고 1주일에 한 번씩 외래진료를 받을 계획이다. 하지만, 수술을 위해서는 골수 공여자의 수술비와 검사비, 다른 도의적인 비용까지 700만 원이 필요하다.
아픈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환하게 웃는 어린 지애에게 주위의 따스한 손길이 필요하다. 힘든 시간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일, 우리의 작은 관심이 한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따뜻한 손길이 될 수 있다.
[야후! 나누리] 엄진옥 기자 umjo2002@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