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안녕하세요, 월드비전입니다.’ 설렘을 안고 들어선 신사동 스튜디오. 그곳에서 꺄르르- 소녀 같은 웃음으로 환하게 반겨주는 Robin Kim(로빈킴) 사진작가를 만났다. 캐쥬얼한 운동화에 야상 자켓을 걸치고 작업실에 앉아 있는 노랑머리의 그녀. 스팅, 레이디가가, 메탈리카 등 세계적 톱스타와 함께한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그녀와의 첫 만남은, 생각보다 더 유쾌하고 소탈했다.
무대와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어요.
Q. 조금은 평범한 질문으로 시작해 볼게요. 사진작가가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가정적이며 음악을 사랑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항상 예술과 친하게 지냈어요. 전축에 아버지의 손길이 닿으면 집안 가득 음악이 흘렀고, 어린 저는 그를 배경 삼아 온 집안 벽지에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아버지 덕분에 오랫동안 미술과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것이, 지금 하는일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진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평소에 좋아하던 헤비메탈, 클래식 등을 몰입해서 연주하는 뮤지션의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완전 양덕후(서양 음악, 영화, 드라마 등을 좋아하는 마니아)거든요. (웃음)
그러던 중, 1995년 겨울에 ‘스키드로우’의 공연사진을 찍게 되었어요. 주어진 단 세 곡 동안의 무대를 카메라에 담으며 가슴이 뛰는 걸 느꼈죠. 그때 생각했어요. ‘이게 내가 끝까지 가야 할 길이구나.’ 이후 1996년도 스팅 내한공연으로 정식 데뷔를 했습니다. 그를 시작으로 미카, 오아시스 등 국내외 뮤지션들과 공연사진, 앨범재킷, 포토북 등 많은 작업을 해왔어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고요.
Q. 공연 사진뿐만 아니라 다양한 뮤지컬 작품 활동도 하고 계시죠?
네. 지난 2005년에 뮤지컬 <헤드윅> OST의 사진 작업을 하게 되면서 제2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어요. 당시 작업했던 <헤드윅>의 승우 사진으로 이슈가 되면서, 현재까지 뮤지컬 포스터와 포토북 촬영을 하고 있어요. 이번에 함께 아프리카 촬영을 다녀온 유준상 씨와도 2011년도에 뮤지컬 <삼총사>를 함께하며 알게 되었어요.
조금은 천천히,
하지만 결코 늦은건 아니었죠.
Q.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셨어요?
데뷔 후 저를 찾는 곳도 많아지고 한창 바쁘던 시기에, 편찮으신 아버지 곁에 있어야 해서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했어요. 지난 2008년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13년이 넘는 시간을 온 가족이 병간호에 집중했죠. 그때는 조금 속상하기도 했는데 돌아보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사진 활동은 60살, 70살이 되어서도 계속할 수 있지만, 아버지는 다시 만날 수 없잖아요. 그 시간을 통해서 배운 것도 참 많아요. ‘내려놓는 법, 기다리는 법, 천천히 가는 법.’ 아버지 덕분에 빠르게 높은 성공의 자리에 오르기보다는 천천히 탄탄하게 저만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어요.
Q. 그동안 정말 많은 톱스타와 작품을 하셨는데, 앞으로 꼭 찍어보고 싶은 사진이 있으세요?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 뮤지션들과는 정말 원 없이 함께했어요. 아시다시피 양덕후이자 락덕후라서 (웃음) 평소에 영감을 얻기 위해 외화와 미드를 즐겨 보거든요. 젠슨 애클즈, 짐 카비젤 등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배우는 많지만, 특히 ‘브래드피트’와 함께해보고 싶어요. 얼마 전 내한 때 레드카펫 위의 브래드피트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광채가 나더라고요. 훗날 기회가 닿아 할리우드에서 그와 작업하게 된다면, 저는 성공한 덕후가 되는 거겠죠? (웃음)
처음 다녀 온 아프리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마음을 담은 사진뿐.
Q. 이번에 유준상 홍보대사와 함께 다녀오신 아프리카 이야기를 해볼까요. 어떤 계기로 동행하게 되셨어요?
월드비전 홍보대사인 유준상 씨가 어느 날 제게 말했어요. “로빈선생님~ 저랑 같이 좋은 일 하러 가요!” 몇 년의 시간을 통해 돈독한 신뢰를 쌓아온 사이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Q. 첫 아프리카 촬영이 힘들진 않으셨어요?
체력적으로 조금 지쳤던 것 같아요. 목디스크로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20시간이 넘는 장시간 비행을 하니 몸에 무리가 갔죠. 하지만 방문 첫날에 만난 사례아동 나콩이를 통해 체력적인 힘듦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꼈어요. 내가 이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어주는 것’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렌즈 너머로 아이의 눈을 마주 보며 계속 눈물이 흘렀던 것 같아요. 카메라가 눈물범벅인 제 얼굴을 가려줘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Q. 아프리카 촬영 중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당시엔 빡빡한 일정에 쫓겨 많은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다녀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밤하늘 가득한 별, 사례아동 로이도의 눈망울, 스텝들과 함께 끓여 먹던 야식라면. 모든 순간이 생생하죠. 특히 아이들과 함께 물 양동이를 들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 물을 뜨러 갔던 순간이 생각나네요. 위로는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아래로는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나아가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그 모습이 너무 거룩해 보였습니다.
마음껏 사랑하세요.
Q. 사진작가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세요.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겠죠. 사진을 잘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고 카메라는 그 통로가 되어주는 거에요.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서 교감하면,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마음껏 사랑하세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경험. 연인, 애완동물, 가족 등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경험이 사진 활동을 하는 데 좋은 영감이 되어 줄 거에요.
Q.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사진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글쎄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네요. (웃음) 저는, 현재 저의 삶과 제가 하는 이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람들과 행복하게 일하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고요. 그렇게 나아가면서 ‘진심이 묻어나는 사진을 찍는 사진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운명이죠.
스튜디오를 떠나기 전 그녀에게 물었다. “작가님에게 사진이란?” 질문과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가 더욱 반짝인다. “다른 말이 필요 있을까요? 운명이죠. 사진은 저에게 운명이자 사랑이에요. 운명적으로 사진과 만났고, 이 일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20년 이상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심장을 뛰게 하는 강렬한 헤비메탈을 좋아하고 레이싱 스피드를 즐기며, 양덕후들의 로망인 코믹콘에 가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 앞으로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카메라와 함께하겠다는 그녀. 10년 뒤, 한국을 넘어 할리우드를 누비고 있을 그녀와 다시 만날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