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보다 40여 분 빨리 도착한 국가대표 축구 트레이닝 센터. 파란 잔디밭 구장과 숙소와 사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 말고는 앉아 쉴 등나무 벤치 하나가 없었다.
빨리 도착했다고 전화 드리기에 너무 예의 없는 시간이라 일단 축구 구장 옆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구름 지나가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고요함이 지루할 무렵 운동화 위로 걸터앉는 잠자리를 하염없이 구경하다 생각했다.
‘아, 운동 밖에 할 게 없겠구나. 여긴’
그렇게 박영수 코치를 만났다. 운동 밖에 할 게 없을 것 같은, 운동만 하라고 만든 것 같은 곳에서.
Q. 요즘 기분 너무 좋으시겠어요. 아이들이 참 잘해줘서.
네. 최고에요. 내 평생 이런 날이 두 번은 없을 것 같아요.
Q. 선수 생활도 하셨었는데, 선수였을 때와 지도자였을 때와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요?
아무리 훌륭한 선수도 지도자만큼은 못해요. 왜냐하면 선수는 ‘내가 잘하면’을 생각하지만 지도자는 ‘팀이 잘하면’을 생각하거든요.
선수는 ‘실력’을 먼저 생각하지만 지도자는 ‘마음’을 꿰뚫거든요. 생각의 범위가 틀려요.
Q. 아이들을 훈련시키면서 강조하는 것도 실력보다는 마음이겠군요.
마음. 인성. 이게 중요하죠. 그런데 운동을 대하는 마음이 아니라 동료를 대하는 마음, 팀을 대하는 마음, 또 나를 대하는 마음.
이게 되면 운동을 대하는 마음은 당연히 바로 서요. 뭐든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우선이에요. 단체운동에서는 확실히 그렇죠.
동료를 배려하기 시작하면 팀 전체가 그 때부터 제대로 굴러가요.
난 아이들이 그걸 잘해줬다고 생각해요.
Q. 아이들 가르치면서 언제가 가장 기뻤나요? 올해인가요?
아니요. 사실 올해보다 작년 세계대회우승했을 때가 정말 소름끼치게 기뻤어요. 올해는 작년 성적이 있으니 기대나 관심이 아주 조금은 있었거든. 그런데 작년엔 정말 아무도 관심도 없고, 관심이 없으니 기대도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한 거예요.
아무도 예상 못했던 일이죠. 잘하라고 격력해 주는 사람도 없는 데서 아이들이 흘린 피땀이 정말 열매를 맺은 거죠. 이 아이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 말이죠.
아, 행복했어요.
여자 청소년 축구대표팀은 국제 축구연맹(FIFA) 주관 여자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민국 축구역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17세 소녀들이 이뤄낸 것 이다.박영수 코치는 월드컵 우승 포상금 중 1,000 만원을 후원했고, 이 금액은 월드비전 국내사업 <꿈꾸는 아이들 지원사업> 내 ‘축구 동아리’ 지원금액으로 사용된다. |
Q. 코치님, 어떻게 기부를 결심하게 되셨어요?
꼬맹이들이 피땀 흘려서 제게 명예와 행복을 주었어요. 지도자로서 느끼는 명예를 나눌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준 행복만큼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었죠. 당연히 그래야 하고. 또 큰돈도 아니고요. 이것이 쓰일 때 아이들이 잠시나마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아요.
Q. 그걸로 족한 마음을 어떡하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그 싸한 즐거움을 맛보지 못해 실천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가끔 초등학생들 축구 연습하는 걸 구경가는데 아이들이 땡볕에 죽자고 뛰고 있어요. 연습 끝날 무렵 만원어치 하드 사 갖고 나눠주면 애들이 이제야 살겠다는 표정이에요. 고작 만원인데 말이죠. 아이들은 행복하고 시원한 거예요. 사 들고 가봐야 느끼는 즐거움이에요.
Q. 코치님, 나눔은 대체 뭘까요?
높은 곳에 물건 올릴 때를 생각하면요. 딱 몇 cm가 손끝에서 모자라는 거예요. 그 때 누가 내 뒤를 조금만 받쳐주면 훌쩍 올릴 수 있잖아요. 제가 한 나눔은 그거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월드비전 후원자님께 한 말씀 해 주세요.
제가 뭐라고 그 분들께 한 말씀을 하겠어요. 이런 분 들이 계셔서 세상이 돌아가는 구나 생각해요. 저는 그 분들 속에 극히 작은 점이에요. 아, 여자 축구는 많이 관심 가져 주세요. 남자도 남자 축구 좋아하고 여자도 남자 축구 좋아하면 어떡해.
글. 월드비전 홍보팀 윤지영
사진. 월드비전 홍보팀 장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