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형이(가명, 15세)는 늦은 밤 우지끈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안방의 다락방 천장이 내려앉은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나무 대를 세워 붕괴된 지붕을 지지해놓았지만, 올 겨울 눈이 쌓이면 낡은 집이 그 무게를 이겨낼지 알 수 없다.
이미 한파가 시작되었지만 재형이 가족은 이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가정불화로 방치되었던 아이들
유민정(가명, 48세) 씨는 이른 아침 무거운 다리를 끌고 식당일을 나간다. 10년 넘게 아이들 양육비와 생활비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은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진통제를 입에 달고 산다. 두 아들은 어려서부터 일 나간 엄마를 대신해 연탄불을 갈고 쌀을 씻었다.
남편이 폭언과 폭력을 일삼아 부부는 한동안 별거생활을 했다. 가정불화로 우울증이 깊었던 유민정 씨는 남편을 대신해 두 아이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 당시 너무 힘들어서 아이들을 신경 쓰지 못했어요. 대문이 망가져서 밖에서는 잠글 수 없는데, 방학이라 애들이 집에 있는 걸 생각 못하고 체인으로 문고리를 칭칭 감아놓고 일을 나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니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지금도 미안해요.”
아이들은 한동안 여름에 긴 팔을 입고 학교에 등교할 정도로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주민들의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경찰이 집으로 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먹한 부모 사이를 중재하며 반듯하게 성장했다.
스스로 자존감 세우는 아이들
“한번은 과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친구들을 데려왔는데, 다음날부터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했어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한다고 이상한 별명까지 생겼어요.”
형편이 어려워 학원에도 못 다녔지만 두 아이 모두 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자랑한다. 수형이(가명, 18세)는 이번 2011년도 수시입학에 합격해 유민정 씨 얼굴에 웃음을 심어주었다.
형의 대학진학은 재형이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재형이는 성적이 우수해 특별반에 소속되어 있다. 과학도가 꿈인 재형이가 처음부터 공부를 잘했던 건 아니다.
외로웠던 중학교 시절 수학과 과학에 몰입하면서부터 새로운 세계를 맛보았다고 한다.
붕괴, 그리고 재발 염려
추석연휴에 내린 폭우는 옆집 홈통을 타고 재형이네 담벼락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밤새 천장이 새고 바닥으로 물이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1주일 뒤, 지붕 한쪽이 내려앉았다.
손바닥만 한 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잠을 자다가 집이 부서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동사무소와 구청, 시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개인주택이라서 지원을 해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생활을 책임진 유민정 씨 월급과 아르바이트로 개인 용돈을 마련하는 남편 형편에 무너지는 집을 재건축할 여유 자금은 없어 보인다. 가족은 벼룩시장에서 2500원 하는 겨울 점퍼를 가족 수만큼 마련해 입을 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만약 지붕이 작년에 무너졌으면 큰애가 공부를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워낙 속 깊은 아이라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 공부를 접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부모가 자식 앞길을 열어주지는 못할망정 발목은 붙들지 말아야 할 텐데요.”
입학금에 이어 갑작스럽게 일어난 지붕 붕괴는 네 가족의 마음을 한층 무겁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겨울 폭설이 내려 집이 하중을 이기지 못하면 폭삭 내려앉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노후화된 주택을 철거 후 재건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성남시 자원봉사센터 ‘사랑의 집 고쳐주기’에서 최소 비용으로 14평 기준 3,020만 원 견적을 뽑았다. 재건할 동안 네 가족이 머물 공간을 마련하려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해 자존감을 세운 수형이와 재형이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사랑의 집이 완성될 경우 두 아이의 삶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다. 수형이가 학비를 벌며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고, 재형이가 안정된 환경에서 자신의 꿈을 단단하게 성장시킬 수 있다.
당장은 겨울이 춥고 힘들지만 봄은 반드시 온다. 세상의 이 작은 이치 하나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안과 힘을 준다. 힘든 환경에서 좌절하지 않고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성장하는 재형이 형제에게 지금 그 환한 믿음이 필요하다.
봄날을 위해 노력하는 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든든하고 따뜻한 응원이 필요하다.
[야후! 나누리] 엄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