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업장직원의 이야기 8
월드비전 후원자 투어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마에 살짝 닿은 부드러운 햇살에 정신이 활짝 깨어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꼼꼼히 씻고 가장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얼굴에는 아내가 사다 준 상쾌한 향의 새 스킨을, 머리에는 기름을 정성껏 발랐습니다.
모랫길에 흔들리는 사륜 구동차 안,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 차보다도 더 쿵쿵거립니다.
오늘은 제가 일하는 월드비전 아샤딥 사업장의 아동을 후원하는 9명의 한국 후원자님들이 오시는 날입니다.
갠지스 강의 새벽과 같은 설렘
석 달 전, 후원자투어 방문소식을 듣고부터 얼마나 정성껏 오늘을 준비해왔는지 모릅니다. 저 뿐만이 아닙니다. 13명의 모든 월드비전 아샤딥 사업장 직원은 물론이고 마을 어르신, 학교 선생님 등 모든 지역 주민들이 한 마음으로 정성껏 후원자님을 맞을 준비를 해왔습니다.
후원자님은 월드비전이 우리 지역에 이렇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게 해 주신 가장 중요한 손님입니다. 주민들은 한국 후원자님들의 방문을 지역축제 이상으로 여기며 직원들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세세히 신경 써서 챙겨주었습니다.
“암렌드라 복지사 선생님, 후원자님들은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면 그 멀고 먼 한국에서 이런 인도 시골지역까지 아이를 보러 온답니까?”
“우리 아이를 보러 오는 후원자님은 없나요?”
“선생님, 제 후원자님은 언제 오세요?”
우리 마을에서 후원자님들은 대스타가 되었습니다. 인도의 유명배우 샤룩 칸이나 아미르 칸이 온대도 이만큼 큰 호응은 없을 겁니다.
내가 상상한 후원자님
vs 실제로 만난 후원자님
처음 후원자님들을 만나고, 내색은 안 했지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상상해오던 후원자님들과 너무 달라서입니다. 제 상상 속 후원자님들은 중년의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머니 아버지처럼 인자하고 따스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아홉 분의 후원자님들은 대부분 저보다도 훨씬 젊은 20대~30대 초반입니다. 심지어 10대 중반의 학생 후원자님도 있습니다. 넉넉하고 여유가 있는 분들만 후원하는 건 아닌가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아이들을 돕는 후원자님들의 미소는 뉴델리 대저택의 부자들보다 훨씬 행복하고 여유롭습니다.
저도 어린 후원자님들을 본받아, 조만간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후원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완벽한 순간
사업장 방문 첫째 날에는 환영 행사와 월드비전이 아샤딥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업들에 대한 소개가 주민들과 지역아동들을 통해 직접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 드디어 후원자님들이 너무나 기다려 온 아동가정방문 시간이 되었습니다.
9명의 후원자님이 두 팀으로 나뉘어 각 가정 당 20분 정도씩 방문하기로 하고 월드비전 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아이를 만나기 직전, 후원자님들은 긴장과 설렘으로 창밖을 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만남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이번에 방문할 집이 내 아동의 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원자님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습니다. 내 아이의 집 앞에 차가 멈추고, 차에서 내려 아이를 보러 걸어가는 발걸음은 얼마나 떨리고, 마음은 얼마나 두근거릴까요.
5년간 사진으로, 편지로만 만나오던 아이를 직접 만나는 후원자님의 마음은 어떨지 헤아려봅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혀 눈과 눈을 마주하고,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는 후원자님. 아이의 까맣고 가느다란 손을 잡고, 아이의 발을 만져보는 순간은 완벽한 만남의 순간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오래 함께 할 수 없다 해도 이 순간은 후원자님과 아이의 기억 속에 언제까지나 HD 고화질 영상으로 선명히 남을 것입니다.
저는 아이를 바라보는 후원자님의 눈에서 넘치는 사랑과 기쁨을 보았습니다. 빛나는 후원자님의 마음은 아름다운 아샤딥 하늘의 별 밭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이들이 헤어진 뒤에는 얼마나 많은 밤들을 서로의 꿈을 꾸며 지내야 할까요.
이 감동적인 만남의 순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후원자님도 수많은 시간들을 아이 생각으로 채우며 가슴 속 뛰는 심장을 자꾸만 확인하며 아이의 집 앞까지 오셨지만, 아이의 설렘 또한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후원자님이 오시기 한 달 전부터 제 얼굴만 보면 이것저것 묻는 얼굴이 얼마나 신나 보였는지요.
“선생님 제 후원자님 오시는 거 맞죠? 어떻게 오세요? 비행기를 타고 오시나요?”
아마 아이의 부모님도 그동안 아이의 질문에 답해주느라 꽤 귀찮았을 겁니다. 후원자님이 보내신 사진을 매일 밤 안고 자고 사진에 입을 맞추며 후원자님을 기다린 녀석들, 막상 후원자님과 마주하니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수줍은 미소만 띄울 뿐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속에 활짝 핀 행복의 꽃을 볼 수 있는 저 또한 아이들만큼이나 행복합니다.
천하장사 후원자님과 행복한 아이
후원자님들은 정말 놀라운 힘을 가졌습니다. 일정 동안 매일 밤 7~8시에 호텔에 들어갔는데,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다시 어제와 똑같이 밝고 힘찬 모습으로 호텔을 나서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밤새 휴대전화 배터리처럼 힘을 충전하신 것도 아닐 텐데요. 아이를 사랑하는 사랑의 에너지가 후원자님에게 그런 힘을 공급한 것 같습니다.
셋째 날은 사랑의 힘으로 천하장사가 된 후원자님들과 아이들 및 가족이 함께 모여 함께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 전통 옷차림으로 아름답게 꾸민 후원자님들이 한국 인기가수의 춤을 준비해 와서 멋지게 보여주셨고, 아이들에게 노래도 불러 주셨습니다. 서로를 위해 티셔츠에 예쁜 그림그리기도 하고, 함께 손을 잡고 뛰어가 밀가루 사탕 먹기 게임도 했습니다.
얼굴에는 아이가 그려 준 알 수 없는 알록달록한 그림으로 가득한 채, 아이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후원자님은 오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입니다.
후원하는 아이를 자기 친자식보다 더 사랑해 주는 후원자님들을 보며, 제 마음은 한낮에 타지마할 돔 지붕을 데우는 햇볕보다도 더 뜨거워집니다. 눈물로 아이를 만나 눈물로 헤어지는 후원자님들, 짧은 만남을 위해 그 머나먼 길을 모든 비용과 수고를 감당하며 온 그분들을 대신해서, 이제는 제가 아이들을 정성껏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뱃속 깊은 중심에서부터 저 후원자님의 사랑으로 내 모든 것을, 내 생명을 바쳐 이 아이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을 조심스레 해 봅니다.
후원자님과의 행복한 만남 이후, 아이들은 조금 더 자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눈망울은 후원자님을 만나기 이전보다 훨씬 더 초롱초롱 빛납니다.
태도가 더욱 진지해졌고, 미소는 더 따뜻해졌습니다.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반짝이는 자신감을 옷처럼 입었습니다.
소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어린왕자의 금발을 닮은 밀밭을 보며 어린왕자를 그리듯 그렇게 아이들도 후원자님을 그립니다. 후원자님이 페인트를 칠한 학교 기둥을 만지며, 후원자님이 심은 작은 묘목이 어떻게 자라는지 매일 확인하며 친구들과 늘 그때를 이야기합니다. 후원자님과 함께 꾸민, 자신의 사진이 붙어있는 카드를 보며, 후원자님이 앉아서 짜이를 마셨던 집 앞마당 자리를 만지며.
하지만 그 그리움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문득문득 떠올라 아이를 시도 때도 없이 소리 내어 웃게 하는, 기쁨과 설렘의 그리움입니다.
암렌드라 카르(Amrendra Kar)
인도 아샤딥 지역개발사업장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아픈 마음으로 월드비전에서 일하게 된 5년차 사회복지사.
“항상 내가 먼저 웃으면 다른 이들도 웃게 되고 모두 행복해진다”가 좌우명인 털털하고 편안한 아저씨이지만, 가난과 억압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