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7일 수요일 오후, 흙먼지를 날리며 월드비전 남수단 내 와랍 지역사무소 (Warrap Regional Office, World Vision South Sudan)*에서 20여분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블록14 (Block14). 여기는 수단(이하 북부수단)에서 며칠을 걷고 또 걸어서 남수단공화국(이하 남수단*)으로 내려온 귀향난민들을 위해 남수단 정부가 지정한 정착지입니다.
흙과 구호물자를 받음직한 텐트 조각으로 만든 지붕만이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귀향민들을 지켜주는 작은 그늘입니다. 거주지에는 만삭의 임신부, 병약한 할머니, 영양실조로 마른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남수단 월드비전의 Headquarter는 Juba에 위치.)
* 남수단공화국은 분리 독립이후 남부수단의 새로운 국가 이름입니다.
그 곳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는 몸을 채 가눌 수 없어 기력 없이 누워있으면서도 저에게 남수단의 새로운 화폐를 보여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수단 파운드 한 장을 보여 드리자 두 눈이 촉촉해지더니 말씀하셨습니다.
‘남수단의 화폐를 보게 되는 날이 오다니…여기, 그의 얼굴이…’
남수단의 새로운 화폐에 인화된 인물은 1983년 수단인민해방운동(SPLM:Sudan People’s Liberation Movement)을 창설해 남수단의 독립 투쟁을 이끌었던 지도자로, 남수단 국민에게 영웅적인 존재인 존 가랑 박사였습니다.
그는2005년 1월 수단의 남북 간 평화협정 체결을 이루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숨졌습니다.
끝없는 내전 끝에 얻은 남수단의 독립
2005년 수단의 북부 이슬람 정부와 SPLM이 체결한 이 평화협정은, 내전을 종식하기 위한 것으로, 6년간의 남수단 자치기간 후 2011년 1월 국민투표를 실시해 분리 독립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오면, 7월에 독립국을 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수단의 내전은 1956년 1월 수단공화국 출범 후 50년 넘도록 북부 아랍계 정부로부터 독립을 원한 남부주민(대부분이 토속종교,기독교를 믿는 흑인)이 이슬람과 아랍 정체성을 강요하던 북부 정부를 상대로 저항한 것입니다.
5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1차 내전(1955~1972년)은 ‘1972 아디스아바바 평화협정’으로 남수단 자치권이 확보된 듯 했습니다. 하지만 1983년 2차 내전이 발생했고, 22년 동안 2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2차 내전은 ‘2005 평화협정’으로 끝나고 2011년 1월, 무려 98%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남수단의 분리독립이 결정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 7월 9일 남수단은 UN에 가입된 193번째 국가로, 공식적인 새 독립국가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진정한 독립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남수단의 향후과제
블록14의 귀향난민들은 이 곳에 도착한 후 3개월 동안 유엔 세계식량계획과 월드비전이 함께 지원한 긴급식량을 통해 생활하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남수단 정부가 가구당 지원한 토지에서 농작물을 기르거나 다른 일거리를 찾아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할당받은 토지가 농작물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 만큼 크지도 않고, 독립한지 1개월밖에 되지 않은 국가이니 경제활동이 시작되고 활기를 띄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무엇보다 오랜 내전으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세대들에 대한 역량강화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에 대한 교육지원이 장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사회 기초시설이 되는 식수, 보건.위생, 도로, 통신 및 기타 인프라 구축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하는 시점입니다. 더불어 식량안보, 경제 활동 촉진 등을 위한 정부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책 운영과 비전제시, 그리고 법 질서 마련 및 치안 유지는 남수단의 정치, 경제, 사회 발전에 필수 요소가 될 것입니다.
Block 14에서 월드비전은 긴급영양지원, 기초보건지원, 식수지원 (borehole) 등을 진행하고 있고, 현재 나무 그늘 아래에서 공부하고 있는 귀향난민 아이들을 위한 초등학교 건축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안전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배우는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장실, 수도시설, 교무실 등은 예산 부족으로 추가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블록14 외에도 와랍주(Warrap State)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콰족(Kuajok)에서 비포장도로를 약 5시간 달리면 닿는 톤즈군은(Tonj South County)은 한국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이 지난 몇 년간 집중적으로 지원해온 곳 입니다.
이곳에서 실시한 심각한 영양실조 아동 및 임산부/수유부를 위한 긴급영양지원과 기초보건지원(Primary Health Care)에 대한 평가를 위해, 마을 대표들과 주민 인터뷰(In-depth Interview) 및 토론(Focus Group Discussion), 가구별 설문조사(무작위 표본추출/Household Survey)를 진행했습니다.
양적 평가분석을 진행하는 동안 우선 질적 평가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던 내용은 기초보건지원 시스템, 의약품 조달 및 정기적 보급(마을 단위까지), 보건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역량을 갖춘 인력부족이 우리가 지원하는 사업효과의 지속성을 가져오는데 큰 도전과제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남수단 정부가 해결해야 할 도전과제이기도 합니다.
남수단의 행정구역은 주(State), 군(County), 파얌(Payam), 보마(Boma), 마을(Village)로 나뉩니다. 마을은 씨족(Clans), 씨족은 확대가족(Compound), 확대가족은 가구(Household:1개의 주방을 함께 사용하는 가족구성원의 모임)로 볼 수 있습니다.
일부다처제가 존재하고, 다수의 딩카족은 소의 소유권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특히 건기 때 목초지와 식수자원을 둘러싸고 분쟁이 종종 발생합니다. 봉고족의 경우 양봉 및 작물재배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대규모 농작물 재배가 아니라 마을의 확대가족 혹은 가구 단위로 소규모 농작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라 남수단 전반적으로 식량안보에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잉여농산물을 당장 기대할 수 없고, 정부가 식량을 다른 국가에서 사들여서 자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충분히 보급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함.)
이러한 식량, 의료 및 보건 분야의 의료품 공급 외 기타 남수단 재건에 필수적인 자원 마련과 시스템 구축을 위해 당분간 국제사회의 지원은 매우 필요해 보입니다. 따라서 인도적 지원 및 수단의 재건복구를 위한 국가 간 양자지원, 공여국의 유엔 및 NGO를 통한 다자 지원으로 당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국가로 탄생된 지 아직 1개월 밖에 되지 않은 곳. 민간인의 무기 소유를 근절하기 위해 군인과 유엔이 함께 무기 회수를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 거리 곳곳에서 총기를 어깨에 두르거나 손에 들고 활보하는 사람이 쉽게 확인되는 곳. 이 중 누가 민간인이고 누가 경찰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곳.
인도적 지원, 재건복구, 개발을 위해 이 나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아 보이고 예산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한국월드비전은 이 중요한 시기에 남수단의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남수단 정부 및 현지 구호개발관련 유엔 그리고 NGO와 협력해 필요한 지원을 계속해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사진.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박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