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전세계적으로 에이즈의 감염경로를 제대로 알아 에이즈를 예방하며, 환우들에게는 차별과 낙인이 아닌 지원을 해 주자는 취지의 날이다. 때마침 근래에 할리우드 배우 찰리 쉰의 에이즈 스캔들이 한창 화제가 되었다.
늘 그랬듯 한 개인의 “문란한 성생활” 과 “에이즈”의 연관성만이 많이 부각 되었다. HIV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가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피증)라는 질병이 국제적으로 명명 된 이래로 20년 이상이 지났지만 여전히 에이즈는 ‘나쁜 사람들이 걸리는 무서운 병’, 고로 ‘나와는 상관없는 병’으로 여겨지며 오해와 멸시를 받고 있다.
에이즈는 HIV(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라는 원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후에 여러 증상들이 발현 되는 상태를 말하며, 면역체계가 심하게 무너져 작은 외부의 세균이나 바이러스조차 이겨내지 못하게 된다.
감염되면 완치는 불가능하며, 평생 치료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치료를 받으면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속도를 낮추지만 온전한 삶을 영위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이미 감염경로로 많이 부각되고 알려진 성접촉 외에도 오염된 주사기 공용, 혈액이나 혈액제제 투여 (수혈), 어머니로부터 아이에게로의 수직 감염이 있다.
(WHO 2015) 에이즈에 걸렸다고 덮어놓고 “문란한 성생활” 때문이라는 결론이 옳지 않은 이유이다.
사실 HIV 감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직접 체액이나 혈액이 섞이며 감염이 되기에, 상처가 난 부위가 아니라면 체외의 체액이나 혈액을 접촉하는 것으로는 감염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렇기에 감염자와 밥을 먹어도, 화장실을 공동 사용해도, 수영장이나 목욕탕을 같이 사용해도, 대화를 나누며 침을 튀겨도, 입맞춤을 하고 같은 공간 안에 오래 살아도 감염 가능성은 낮다. 성 접촉 시에도 콘돔 사용을 통해 85% 이상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HO 2015) 에이즈가 심각한 질병임은 분명하지만, 예방경로와 수칙을 정확히 숙지하여 근거 없는 두려움이나 불필요한 경계를 늦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월드비전에서 보건 사업을 담당하고 있지만, 나에게도 에이즈 환우들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2009년 처음으로 인도 넬로어 지역 HIV/AIDS 예방사업장에 방문 해 환우들을 직접 만날 때, 정말 많이 겁먹었던 기억이 난다. 조그만 상처라도 있어서 감염될까 싶어 손가락마다 밴드를 둘둘 싸매고 갔었다.
그 때는 몰라서 그랬다 치더라도, 그로부터 6년 후 국제보건학 석사를 마치고 방문한 HIV/AIDS 예방사업장에서도 나는 환우들과 포옹하고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내면서도 마음 깊은 곳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머리로 아는 예방수칙이나 감염경로에 대한 정보들이 마음에까지 와 닿기가 이리도 어려운가 싶어 만감이 교차했다.
이번 7월에 넬로르 지역을 방문 한 것은 지난 3년간 수행 해 온 사업을 평가 하고, 개선점을 도출 해 보기 위해서였는데, 이 때 이야기 나누었던 많은 환우들이 가장 도움이 된 사업내용으로 꼽은 것도 바로 월드비전 직원들과 동료 환우들로부터 받은 정서사회적 지원이었다. 2009년부터 지역에서 일 해 온 월드비전 직원들에게는 원칙이 하나 있었는데, 환우에게 절대 에이즈 감염 경로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넬로르 지역은 인도 타밀나두 주에서는 꽤 규모 있는 도시 중 하나로, 교통과 교육의 중심지이기에 외부 인구의 유입이 잦아 HIV가 유입 및 확산 되는 곳이었다. 직접 만나 본 지역의 청년들은 에이즈의 위험성과 정확한 감염경로에 대해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와 무관하게 실제로 환우들이 지역 내에서 겪는 차별은 눈물겨웠다.
우리 직원들은 말했다. “나도 그런 편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감염 원인에 대해 묻지 않는다”고. 그들의 과거를 탓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으니, 이제부터 어떻게 전염 되는 것을 막고 환우들이 자신들과 자녀들의 삶을 잘 영위해 갈 수 있을지에 집중한다고. 그리고 그 사이 자신도 많이 변해, 이제는 환우들에게 많이 의지한다고 말했다.
만났던 환우들은 같이 울어주는 누군가, 의사에게도 이웃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정을 속속들이 말할 수 있는 누군가, 그럼에도 자신을 받아주고 함께 미래를 고민 해 주는 누군가가 가장 필요하다며 많이 울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 주는 건 월드비전 직원들뿐이라며 절대 떠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많은 에이즈 환우들이 질병과 가난의 반복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기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업들도 큰 사업 요소이다. 몇 가지 예로 치료를 받더라도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면 면역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기에 꼭 필요한 영양소는 반드시 섭취하도록 식료품을 지원 해주는 일, 가벼운 일을 하면서도 수입을 올려 경제적으로 자립 할 수 있도록 작은 사업을 할 종자돈을 지원 해 주고 필요한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 해 주는 일, 또한 치료 외에도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 하는 경제적인 지원을 잘 알아 찾아 내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 등이다.
평가 결과에 의하면 이런 지원들은 가정들의 경제상태나 건강상태를 지속적으로 파악 해 적절히 제공 하면 환우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월드비전은 이렇게 “주는 것”은 지역에서 영원히 머물 수도 없고 머물러서도 안 되는 월드비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정서사회적 지원 또한 자녀를 정서적으로 독립시키는 것과 비할만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지역사회에 남을 누군가에게 이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평가 후 앞으로의 3년을 함께 그려 보았다.
가끔씩 모여 환우들을 물질적으로 돕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모금을 해 오던 에이즈환우 지원위원회 (종교 지도자, 마을 대표,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를 지금보다 활성화 해 지역사회에 편견을 감소시키는 역할, 마을에서 환우들에게 정서사회적 지원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환우들 또한 스스로 정부에서 제공하는 지원을 찾아 받을 수 있고, 작은 사업을 통해 자신과 아이들의 미래를 개척 해 나가도록, 그들의 자립을 돕는 데 더욱 힘쓰기로도 했다. 이 또한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두려움이란 본성을 거슬러야 환우들과 동행 할 수 있었듯, 지역 사회에서 본성을 거슬러 많은 장벽을 넘기까지 다시 한 번 동행 해 보려 한다.
글. 이지은 Grant&PNS팀
사진. 이지은/ 글로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