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숙의 나눔 그랜드슬럼
2001년 10월, 월드비전 국제본부 딘 허쉬 총재의 방한으로 국내 이사들과 함께하는 회의가 열렸다. 당시 회의의 동시통역을 맡은 이는 이상숙 후원자.
월드비전과 그녀의 인연은 그때부터다. 이를 계기로 에티오피아 후원아동 레마를 만났고, 지구촌 아이들을 위한 마라톤도 시작되었다.
2003년부터 매해 특정사업을 지정하고 후원을 목적으로 달리는 42.195km의 마라톤. 나눔으로 그랜드슬럼을 달성하는 이상숙 후원자에게 42.195km는 사랑이다.
몽골에 가보셨나요?
2백만 마일 넘게 비행기로 돌아다녔어도 저는 아직 고비사막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함께 올해는 몽골에 가요. 하지만 비행기는 안 타고 가요.
몸은 못 가지만 제 마라톤 후원이 그 곳으로 가요.
몽골 장애아동 재활센터 만들어주는 우리들의 사랑으로 함께 몽골에가요.
시카고 마라톤을 완주하면서 이제 세계 5대 마라톤을 다 섭렵했습니다.
뉴욕, 보스톤, 런던, 베를린, 시카고 이렇게 다섯 대회인데 엘리트 선수의 경우, 전체 합쳐서 1등을 하면 마라톤계에서 그랜드슬럼이라고 부릅니다.
아마추어는 완주만으로도 그랜드슬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독창적인 제 해석이고 저 혼자만의 “(여행)빚과 (땀)소금” 입니다.
그런데 다 뛰고 나서 한가지를 터득했습니다.
호놀룰루 3회, 뉴욕, 서울, 통영, 춘천 이렇게 7번의 대회였지요. 올해가 8 번 째 마라톤 후원입니다.
마음은 가볍고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하여 달릴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8번째 마라톤 후원자들을 독려하는
이상숙의 편지 중에서.
17km에서 아킬레스 부상
11월 7일 아침 날씨는 마라톤 하기에 더없이 좋았습니다.
제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잘 달리고 있었습니다.
17km 지점에서 청천벽력! 약간 오르막인데 왼쪽 아킬레스건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왔습니다. 발을 바닥에 댈 수도 없이 찌릿한 아픔에 통증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며 오른발에 무게를 실어 절름발이로 2km를 뛰었습니다.
19km 지점에서 의무요원의 도움을 받고 상태를 체크하였습니다. 어쩌겠습니까? 회송버스까지는 가야죠. 속도를 현저하게 줄이고 절름발이처럼 움직이며 추월하는 무리들의 바람을 느끼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버스가 보일 때까지만 가보자.’ 하는 무거운 마음에 머리 속으로는 완주후기 대신 중도포기의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출발선에 서기만 하면 항상 완주는 했었는데, 이번엔 버스를 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가보자
24km 지점에서 나이 지긋한 개인택시 아저씨들이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아줌마~ 잘 달려요~” 앞서 가던 젊은 아줌마가 고맙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를 향해 “아~ 젊은 아줌마 말고~ 아줌마요~ 우리는 하지도 못해요.”
이 한 분의 응원이 저를 살렸습니다.
회송버스 지점을 그냥 통과했습니다. 뒤에서 이미 교통통제를 풀어주고 있었습니다. 꼴찌라는 뜻이지요. 슬슬 통증이 오기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32km 주변에서 서울공항 주둔하는 젊은 장병들이 늘어서서 단체로 함성을 지릅니다.
“어머니, 아버지, 존경합니다!”
장병들이 응원으로 내미는 손에 화답합니다!
“엄친아들아, 고맙다!”
35km 안내판, 12시 15분 통과 제한시간이 넘었으니 회송버스를 타십시오.
몽고 장애아동 재활센터 후원이 아니었으면 진작 버스를 탔을 것 입니다. 무엇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저를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오로지 결승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을 붙잡고, 끙끙 신음소리를 눌러가며 무겁게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멈추면 넘어질 것 같았으니까요. 마지막 급수지점에 도달했을때 자원봉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제한시간 5시간 안에 들어갈 수 있으니 힘내세요!”
올림픽경기장 한바퀴를 돌아 드디어 피니시라인(Finish line)입니다.
4시간 56분 12초, 눈물 젖은 빵
완주메달과 간식봉지를 받아 탈의실로 들어왔습니다. 곰보빵 한 조각 입에 넣는 순간, “너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았느냐?” 소리가 들렸습니다.
텅 빈 텐트에서 제자신과 대면했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오만했었는지 반성했습니다. 훈련도 없이 자만했던 것, 초반에 화장실을 가는 사람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한 것, 걷는 사람들을 불쌍하다고 했던 것, 회송버스 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의지가 약하다고 오해했던 것.
엉엉 울면서 눈물 젖은 빵을 먹었습니다.
“어쨌든 몽골아동 후원금은 당당하게 받을 수 있잖아요!”
“사랑해요, 감사해요, 괜찮대요”
마라톤이 끝난 후 병원에서 X-레이를 찍고 물리치료를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덜 심각해서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잘 회복만 하면 후유증은 없다고 하니 좀 있으면 앞으로도 살살 달릴 수 있을거예요.
여러분 사랑해요. 감사해요.
마라톤 후원에 동참해주는 통역사 동료들과 제 후원을 기다리고 있을 몽골 장애아동들이 아니었다면 중도에 포기 했을 겁니다. 걷다시피 하여 겨우 결승점까지 왔는데, 부상을 입고도 완주했다며 마라톤 동정 보너스까지 챙겨주어서 그 해 가장 많은 금액 (총 8,373,825원)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당시의 후유증으로 살살 뛰어야 하지만 그래도 뛰는 건 저에게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매년 마라톤 후원을 하는 건 크리스마스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지구촌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주려고요. 크리스마스는 해마다 있잖아요. 아이들을 돕는 것도 빼먹을 수 없어요.
이제는 후원해주는 친구들이 오히려 저의 후원요청 메일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동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기도 하고 끝나고 나면 함께 축하하면서 돈독한 정도 쌓습니다. 그래서 전 올해도 달릴 예정입니다. 뭐든지 꾸준히 해야 역사가 이루어지겠지요?
누군가를 도와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나눌 수 있는 특권이 제게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2001 _ 월드비전 세미나 동시통역 재능나눔
2002 _ 해외아동후원 시작 , 에티오피아 소년 레마와의 만남
2003 _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 40명의 지인과 함께 에티오피아 교육시설
(약 6,000,000원 후원)
2004 _ 태백 꽃때말 공부방 (6,000,000원 후원)
2005 _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 아제르바이젠 장애인 여성을 위한 지원
(약 7,000,000원)
2006 _ 뉴욕 마라톤, 태풍피해를 본 베트남 아동시설 복구
(약 7,000,000원)
2007 _ 서울 국제 마라톤
2008 _ 통영 마라톤, 국내 위기가정지원사업
(6,200,000원)
2009 _ 춘천 마라톤
2010 _ 중앙 마라톤, 몽골 장애아동 재활센터 지원
(8,673,700원)
글/사진. 이상숙 후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