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난민 돕기
김혜자 월드비전 친선대사와 월드비전, 그리고 SBS <희망TV>가 케냐 다답 난민촌을 찾았다. 지난 20여 년,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과 아이들을 위해 누구보다 먼저 나선 김혜자 월드비전 친선대사는 이번에도 죽음에 맞닥뜨린 이들의 아픈 손을 잡아주고 또 그들의 현실을 많은 이에게 알리기 위해 힘든 일정을 마다하지 않고 앞장섰다. 그렇게 우리 일행이 만난 이웃과 아이들은 말 그대로 하루하루 죽음과 싸우고 있었다.
소말리아는 지금 내전과 가뭄 두 가지 악재를 동시에 겪으며 말 그대로 ‘살기 위해서’
그들의 땅을 떠날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맞닥뜨렸다. 보통 일고여덟 식구의 가정이 짧게는 5일, 길게는 한 달을 걸어서 케냐의 난민촌으로 넘어온다.
걸어오면서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거나 강도를 만나는 등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국제난민기구가 버스를 지원해 이들의 이동을 돕고 있지만, 모든 난민이 이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아 어린 자녀를 잃었다는 부모는 자녀가 너무 많아서 다른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한 아이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결코 벌어질 수 없는 잔인한 일들을 이들은 고스란히 겪어내고 있었다.
바로 지금, 우리가 가야합니다.
케냐 다답 난민촌 방문은 김혜자 월드비전 친선대사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김혜자 친선대사는 21년간 월드비전과 함께 지구촌 가장 고통 받는 현장을 다니며 한국 후원자들에게 그 실상을 알려 나눔을 실천하게 하는 생명의 다리와도 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도 친선대사는 심각한 동아프리카 기근으로 그곳의 아이들이 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니 우리가 가서 그 실상을 국민들에게 빨리 알려 도움의 손길을 전해야 한다며, 난민들은 이 순간에도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 바로 도와야 한다고 거듭 강조 했다. 고통 받는 아이들로 인해 찢어지는 친선대사의 마음에 공감한 월드비전과 SBS <희망TV> 는 최대한 빨리 그곳을 찾을 준비에 착수했고, 그렇게 해서 또 한 번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아단, 미안해. 반드시 살아야 해
난민촌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도움이 절박한 사람들 중 극심한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아이가 누워 있는 텐트에 들어서자마자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정말 현실인가?
우리가 다가갔지만 아이는 푸른 천에 싸여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얼굴과 팔다리에는 뼈만 남아있었고, 피부는 동물 가죽처럼 말라 있었다.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는 5일째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고, 약간의 죽과 물마저도 모두 토해내고 있었다.
아이의 이름은 아단, 네 살 남자아이다. 한창 까불고 뛰어놀아야 할 나이인데 먹을 것이 없어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온 잔혹한 시간들이 원망스러웠다.
‘미안하다 아단. 네가 이런 고통을 받게 해서…’ 속상하고 미안하고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났다. 김혜자 친선대사도 먹을 식량이 없어 이 어린 것이 생사의 고비에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아픈 심경을 토로했다.
우리는 바로 아단을 병원으로 이송했고, 다행히 의사선생님은 2주 정도 입원해 치료받으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이 일은 ‘꼭 해야만 하는 일’이란 것을 마음 깊이 깨달았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것을.
불현듯 한국의 수많은 후원자님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꼭 말씀 드리고 싶었다. “후원자님들이 이렇게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후원자님들과 함께 이 귀한 일을 할 수 있어서 저는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라고.
한없이 예뻤던 딸, 씨엘
김혜자 친선대사와 난민촌 사람들을 만나다가 무덤을 파고 있는 동네 사람들을 보았다. 서너 명의 장정들이 돌아가며 정성스럽게 파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작았다. 바로 어린 아이의 무덤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텅 빈 눈동자로 마른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이틀 전 또 한 명의 아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어머니는 이제 흘릴 눈물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두 아이를 죽게 한 이유는 모두 홍역, 영양실조를 겪는 난민촌의 아이들은 허약한 데다 비위생적인 환경에 살고 있어서 홍역과 같은 전염병이 돌면 힘써볼 방법도 없이 죽어간다고 했다.
무덤에 뭍일 아이의 이름은 씨엘, 세 살 여자아이다. 씨엘은 얼마 전만 해도 어머니를 도와 집안 심부름도 잘하고 애교가 많아 늘 웃음을 주는 착한 딸이었단다. 예쁜 아이 씨엘을 이젠 차가운 땅에 묻어야 한다니…
김혜자 친선대사는 무덤 앞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씨엘과 같이 영양실조와 홍역으로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하루에도 네다섯 명이 된다. 캠프촌 전체가 아닌, 캠프촌 안의 한 구역에서만 말이다.
어머니의 기도
다답 난민촌의 모든 NGO직원들과 방문객들은 UNHCR(유엔난민기구)캠프에서 지낸다. 긴급한 기근상황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모여든 NGO 인력들과 언론인들로 붐비는 바람에 겨우 캠프 내 텐트를 잡을 수 있었다. 새벽녘이 되면 밤바람 소리가 너무 커서 무서웠고,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에 이불을 한 개 더 꺼내 덮어도 추위가 느껴졌다.
아단의 가족도, 씨엘의 동생도 이 밤 똑같이 무서운 밤바람을 맞을 것이고 새벽 추위를 견디고 있을 것이다. 변변한 이불도 없이 밤바람과 추위도 막아주지 못하는 지붕아래서 오늘도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난민촌 아이들에게 나의 텐트와 담요, 그리고 하얀 모기장이 사치스러운 것만 같아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새벽 김혜자 친선대사의 텐트에서 흘러나오는 절박한 기도소리는 난민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고통의 현장을 목격하며 힘겨웠던 우리 일행들에게도 위로와 큰 힘이 되었다.
이 곳에도 희망은 있다
난민촌 방문 마지막 날, 이 날 새벽에 도착한 난민들을 만나기 위해 일찍 난민등록센터장을 찾았는데, 그 앞을 한 무리의 여인들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고 있었다. 이들 또한 난민이지만 새벽마다 도착하는 새로운 난민들을 위해 등록센터장 앞을 자원하여 청소하는 것이란다.
먼저 자리 잡은 사람들이 새로 찾아온 고향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다해 청소하고 있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난민촌에는 어둡고 아픈 모습들이 너무 많지만, 밝은 희망을 꿈꾸는 아이들, 서로에게 힘과 의지가 되어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 오늘의 희망을 자리 잡게 해주고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우리가 힘을 합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2011년 2월 3일, 국제 월드비전은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이라고 불리는 동아프리카 지역의 3개국의 심각한 가뭄과 식량위기에 카테고리Ⅲ(최고등급의 재난단계)을 선포하였습니다.
60년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는 1,3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위하여 한국월드비전은 먼저 케냐 와지르 남부지역의 가뭄대응사업에 힘썼으며 수혜인구는 21개 지역사회 센터의 7,860가정과 8개 초등학교의 1,545명으로 추산됩니다.
동아프리카 가뭄 및 식량위기에 대한 월드비전의 노력은 계속 이어질 것이며 자세한 내용은 사업보고를 통해 꾸준히 업데이트 됩니다.
[월드비전 2012년 1+2월호 수록]
글+사진. 홍보팀 김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