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살아 숨쉬고 있다’
- 한국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전지환 -
3월 11일은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년이 지났고, 그 대단하다던 일본인데 대지진의 현장은 처참하다. 일본정부의 주도하에 여러 구호단체가 발벗고 나섰으며 특유의 민족성으로 현장이 정리되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발판이 조금씩 마련되고는 있지만 단호한 자연과 만만치 않은 현실 앞에서 인간은 서글픈 존재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세시간,
그리고 지진이 발생한 뒤 구호 사업을 위해 마련된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하늘도 흐린데다 단란했을 어촌 마을임을 알게 해 주는 희미한 집터들에 발걸음도 마음도 서성대는 와중에 풍채좋은 어부 아저씨를 만났다.
지금도 검은 물이 덮쳐와 모든 것을 삼켜버린 그 날이 눈 앞에 생생하다는 요네쿠라 씨. 느닷없는 그 검은 물은 신선한 생선으로 가득 찼던 냉동창고들을 박살냈으며 한달 동안 정전이 계속되어 1,000톤에 달하는 생선을 썩게 했다. 풍비박산 난 집과 마을을 보는 것도 허무했지만 부패된 생선을 치우는 작업은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재난이 발생한 직후 월드비전의 비상식량 및 위생 물품 지급, 임시대피소와 아동 쉼터 건설 등 초기 긴급구호 사업 진행으로 현장이 정리가 되어가면서 가정과 지역 사회의 경제가 하루라도 빨리 회복되는 것이 이재민들이 보통의 삶을 되찾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다.
일본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어획량을 자랑할 정도로 어업이 주된 생업이었던 케센누마 지역에 월드비전은 3000톤의 생선을 1~2년 동안 장기보관할 수 있는 냉동고와 자동 생선 분류 기계를 지원했다.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월드비전을 통해 모금된 후원금으로 진행되고 있는 생계지원사업은 요네쿠라 씨와 같은 어부들이 삶을 꾸려나갈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매서운 바닷바람에 손끝이 아린 오후, 해안 가까이 조그만 상이 마련되었다. 월드비전에서 마련한 어선을 타고 양식업을 다시 시작한 마을 주민들이 그 배로 수확한 미역과 각종 해조물들을 내오고, 즉석에서 뜨끈한 된장국을 끓인다. 소박한 잔칫상을 마련한 이들의 손길은 분주하며 활기차다.
배를 타고 직접 바다에 나가는 사내들도 그들이 걷어올린 미역과 해조물들을 분류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아낙들에게도 양식업은 이 지역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중요한 수단이다. 월드비전에서 지원한 어선을 타고 미역을 키우는 양식장에 가 보니 고맙고 대견하게도 시퍼런 바다 속에 미역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
현장에 도착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마을 건물에 걸린 일년 전 그 날, 쓰나미가 몰아닥친 그 순간에 멈춰져 버린 시계였다. 시계 속 시간처럼 멈추어버린 듯한 마을 구석구석에서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사건 직후, 전세계 언론에 노출되어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이야기해야만 했던 재난 지역 아이들의 인권 보호와 심리적 안정을 위해 아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학교 옆에 마련된 아동 쉼터에서 월드비전 전문 교사와 함께 옹기종기 앉아 즐거워 보이는 아이들 모습에 안심이다.
급식 센터 지원으로 충분한 영양소 섭취가 가능하게 되어 아이들의 건강까지 챙기는 등 삶을 회복하고 내일을 꿈꾸기 위한 노력은 아이들의 시간 속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일상적인 생활로의 복귀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 여러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하지만 그 시간마저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주민들과 그들 옆에서 함께 달리고 있는 이들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다. 나는 그것을 현장에서 보았고, 함께 달리고 싶은 수많은 후원자들의 마음까지 내 손과 마음에 담아 나아간다. 이 곳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글. 국제구호팀 전지환
사진. 홍보팀 윤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