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하브로 ADP 직원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차로 8시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시골에 하브로 사업장이 있습니다. 이곳에는사정이 어려워 가족을 떠나 남의 집 청소나 집안일을 해주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출장 중에 만난 고사(Gosa)도 친척집에서 지내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열세 살, 매일 아침 집안 일을 돕는 고사
아침 7시, 고사는 설거지를 시작합니다. 기름때 묻은 그릇부터 빠른 손놀림으로 척척 해나갑니다. 다음은 거실 청소. 쓱쓱 능숙하게 바닥을 쓸어 내리는 모습이 열세 살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집안일을 마치면 고사는 방에 들어가 책을 꺼내 숙제를 합니다. 학교 오후반인 고사는 이렇게 매일 아침 집안일을 하며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하고, 학교에서 돌아온 후에도 저녁 준비 등 집안일을 마친 후에 12시까지 공부합니다. 다른 집에서 일하다 이 집으로 온지 반년이 되었는데, 새 학교에서 벌써 전교 3등을 합니다. 고사는 학교에 적응하고 나면 꼭 전교 1등을 할 거라고 말합니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열의를 가지고 공부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고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렸을 땐, 나를 다른 집에 보내는 엄마가 원망스러웠어요. 갈수록 성격이 거칠어져 가는 엄마를 보면 짜증도 나고, 엄마와 같이 사는 동생들이 불쌍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자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엄마가 그렇게 변한 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가난 때문에 사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의사가 되어야겠다고요. 꼭 우등생이 되어 장학혜택으로 대학도 가고 의사가 되어 엄마를 돕고 싶어요. 엄마의 삶을 바꿔주고 싶어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고사를 만났던 현지 직원 신타예후(Sintayehu)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이 가족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안타깝다고… 그러자 신타예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이 아이의 모습이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그 고통이 더 심했다고 합니다.
어렸을 적 전교 일등이었던 이 직원을 시기한 주인 아주머니가 자신이 공부를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일을 시키고,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조차 일을 쉬지 못하게 하여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며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공부를 잘 했으면 좀 더 편한 직장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이 시골에서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주위를 둘러보고 또 다른 직원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니 이곳 월드비전 하브로 사업장 직원들이 참 신기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 속에, 회계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숙소와 사무실을 왕래하는 단순한 일상을 살아가는 재무 담당 직원. 운전 중에 지나가는 아이들만 봐도 좋아서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면서 정작 자기 딸들과는 떨어져 핸드폰 사진으로 얼굴을 보며 보고픈 마음을 달래는 5년 차 기러기 아빠, 운전기사 직원.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아이들이 지겹지도 않은지, 아이들이 몰릴 때마다 한 아이 한 아이 말을 걸어주던 “사랑”이란 이름을 가진 취약아동/보건 담당 직원. 대학원 장학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대학 교수직을 한 학기만에 그만두고 수도에서 여기까지 내려온 전략 담당 직원.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 나누어 보니, 누구 하나 희생 없이 이 자리까지 온 사람이 없는 듯 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매일 숙소와 사무실, 그리고 사업 현장, 마을 주민을 만나는 삶을 사는 이들의 사명감과 헌신에 존경심이 생깁니다.
저녁식사 후 직원들의 모임에 함께했습니다. 회계연도 2012년을 마치며, 서로를 격려하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수고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이 자리에서 직원들은 다시 한번 아이들과 주민들에 대한 섬김을 다짐했습니다. “아이들과 주민들을 섬기고 서로를 섬기는데 보상을 바라지 맙시다. 우리가 베푸는 물 한 잔이, 나눔과 섬김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에 돌아 온 후 계속 연락하는 한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왜 월드비전에서, 그리고 사업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나요?”
직원이 대답했습니다. “월드비전은 가난한 자들 중 가장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니까…” 참 명료한 대답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이 사람들의 희한한 삶을 대변하는 정확한 답이었습니다. 이 대답에 저 또한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내 한계를 넘어 다시금 헌신과 섬김의 마음을 다져봅니다.
글+사진. 후원관리팀 김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