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그 아이가 있으니까요
에메랄드 빛 바다와 싱그러운 햇살이 있는 지상낙원 괌, 하와이, 몰디브. 신혼여행하면 꼽히는 대표 장소다. 그러나 도로포장도 없고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가난한 베트남 시골마을을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젊은 커플이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사랑하는 후원 아동이 그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지에서의 신혼여행이 낙원이었다고 말하는 한 신혼부부를 만났다.
‘선영이모(Aunt Seon Young), 사귀게 된 남자친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네요. 남자친구 사진이 보고 싶어요. 어떤 모습일까요?’
‘사진 잘 봤어요. 전 이모의 남자친구를 잘 모르지만 당신을 매우 사랑하는 것 같아요.’
‘와! 결혼 축하드려요. 이모, 두 분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기도할게요. 그런데 29살에 결혼이라니요? 우리는 20대 중반도 늦은 거예요…’
사랑하며 싹튼 또 하나의 사랑
결혼 6개월 차에 접어든 새댁, 박선영 후원자가 파일에 가득 꼽아 가져온 편지는 10대 소녀의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6년 전 그가 사회 초년생이 되었을 때였다. 월드비전 1대 1 결연 프로그램을 통해 박 후원자와 베트남 소녀 트라의 만남은 시작됐다. “처음에는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 간단한 문장으로만 편지가 왔어요. 그런데 아이가 크고 또 저와 친해지면서 점점 사연이 가득 담긴 장문의 편지로 변하더라고요.” 사진 속 130cm의 소녀의 키도 어느덧 그와 비슷한 160cm 정도로 자랐다.
무엇보다 주고받는 편지 속에 점점 풍성해지는 내용이 있었다. 바로 박 후원자의 남편 임승혁 씨와의 러브스토리다. 그와 트라의 인연이 두터워질수록 커플의 사랑도 커졌다. 실은 그들의 만남 역시 트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들은 2년 전 월드비전 후원자카페 정모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은 한 테이블에서 후원 아동을 위한 성탄 카드를 만들었다. 박 씨는 트라의 이야기를, 남편 임승혁 후원자는 방글라데시 후원아동 사고르의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을 가지게 됐다.
월드비전 前 긴급구호 팀장 한비야의 책들을 읽고 후원을 시작하게 점 역시 통하는 부분이었다. 임 후원자는 미소를 잔뜩 머금고 그 때를 회상했다.
“나눔이라는 공통분모는 데이트의 재료가 됐어요. 월드비전 사랑의 동전 밭이 청계광장에서 매년 열리잖아요? 그 때마다 함께 찾아가 동전도 뿌리며 즐거운 시간도 보냈고요. 후원자 모임에도 함께 참석했지요.”
주변의 우려에도 바꾸지 않은 결심
이 사랑이 결실을 맺어 올해 6월 결혼식을 올리게 된 박선영 후원자는 결심했다. 인생의 짝을 찾고, 사랑하게 된 모든 과정에 트라가 있었던 만큼 이 기쁨의 순간에 트라와 함께 해야겠다고. 그는 그 뜻을 임 후원자에게 전했고 임 후원자 역시 기뻐하며 흔쾌히 승낙했다. 가는 김에 하노이 등 다른 베트남 지역을 며칠 여행한 뒤, 월드비전의 협조를 받아 트라가 사는 곳을 찾아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당시 주변 반응은 대부분 의구심 반, 우려 반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덥고 습한 다낭 공항에 내려, 차로 비포장도로를 달려 고지대 지역, 트라미로 향했다. 4시간이 넘어 도착한 그곳에는 트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더라고요. 언어가 달라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는 걸 보자마자 확인했지요.” 이 말을 하며 그는 붉어진 눈에 손수건을 연신 댔다.
한국과 베트남 그 사랑의 거리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들 부부에겐 트라의 삶의 환경을 경험하고 월드비전의 지역 개발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베트남 음식을 먹으며, 베트남 전통모자 논(nonh)을 쓰고 트라의 어머니와 오토바이도 탔다. 마을 사람들이 기르는 돼지, 닭 등도 보고 생업의 일부가 되는 바나나 나무 사업도 보며 트라가 편지로 이야기해주던 현장을 직접 체험했다. 베트남은 한층 더 마음 깊이 다가왔다.
한국에서 늘 전해오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트라는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가수 슈퍼주니어와 이승기를 좋아하고 한국 노래도 꽤 안다고 했다. 가수가 되는 것이 트라의 꿈이다. 수줍음이 많은 이 10대 소녀도 꿈을 이야기 할 때는 꽤 의연해졌다. 이들 부부를 위해 베트남 가요도 불러줬다. 물론 답가 요청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답가를 요청하기에 이승기의 ‘결혼해줄래’를 트라와 현지 사람들 앞에서 불렀지요. 아, 그런데 그 노래를 그 친구가 너무 좋아하는 거 있죠?” 임 후원자는 그 때를 회상하며 박 후원자와 함께 껄껄 웃었다.
베트남에서 받은 축하, 그리고 눈물
그 날 부부가 두 손 가득히 들고 온 하트 모양 상자가 있었다. 바로 트라가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마련한 사탕박스였다. 상자, 하트 사탕, 포장, 카드 모두 직접 손으로 만든 것이다. 그들을 위해 트라는 월드비전 직원과 함께 깜짝 파티도 준비했다. “저희가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가려는데…….갑자기 촛불이 가득 켜진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다들 나타나신 거예요. 저도 모르게 울고 말았지요.” 현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케이크였다. 그들을 위해 특별히 다른 지역에서 공수해온 순백의 웨딩케이크였다. 당시 사진 속의 박선영 후원자의 눈에는 감동의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저희는요. 정말 트라도, 사고르도 결연이 종결되더라도 계속 돕고 싶어요. 단지 돕고 받는 관계가 아니라 가족처럼 친구처럼 연을 이어나가기를 바라요.”
후원이 종결되면 많이 아쉬우면서도 뿌듯하겠다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앞으로 이 ‘나눔 부부’는 임 후원자의 후원아동 사고르가 좀 더 성장하면 언젠가 방글라데시로 향하겠다고 말했다.
미소를 부르는 마법, 나눔
2시간이 넘는 동안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던 박선영, 임승혁 후원자.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나눔’이 어떤 의미냐고 묻자 “이런 거 미리 알려주셨으면 저희가 미리 고민하고 왔을 텐데요”라며 애교 섞인 아쉬움을 보였지만 이내 멋진 대답을 들려줬다.
“저희에게 나눔은 ‘미소’지요.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지만 그 때마다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저절로 웃게 되지 않나요? 마법 같아요.” 이 말을 마치고 흘러나온 그들의 환한 미소. 그들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월드비전지 2012년 1+2월호 수록]
글. 홍보팀 김효정
사진. 재능나눔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