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꿈
열여섯 시리아 난민 소년 무함마드의 꿈은 의사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아드라 지역에 살던 무함마드 가족 12명은 문을 채 닫지 못할 만큼 난민을 꽉 채운 승합차를 타고서 석 달 전 국경을 넘어 레바논에 도착했다. 소년은 지금 레바논 국경지대 베카에 산다. 무함마드는 어둡고 작은 난민 텐트에서 일기를 쓴다. 지난 4월 16일 이 난민 텐트에서 만난 소년은 자신의 일기장을 내주었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 죽음과 맞닿은 공포, 무너져버린 자신의 영혼을 걱정하는 마음이 일기장에 기록돼 있었다. 난민으로 사는 것은 무엇인가. 비가 새는 볼품없는 텐트와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빨래 조각, 그 사이에서 울고 있는 아이와 불쌍한 여인들. 우리는 그 정도를 상상해 본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일기장을 엿보며 난민 이미지에 가려진 한 사람을, 소년을 만나게 된다. 동정을 넘어 공감에 이른다.
1. 헬로냐 굿바이냐. 내 생각과 마음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야. 내가 헬로라고 말한다면 이 문장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어. 가끔씩은 태양과 하늘이 행복하게 보여. 가끔씩 슬퍼 보이기도, 가끔씩 미친 것 같기도 가끔씩 이성적으로 보이기도 해.
내가 굿바이라고 말한다면 이 말을 여러 번 말해야 한다면 내가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면 나의 조국에게 잘 있거라, 나의 집에게 잘 있거라라고 말할 거야.
그러나 지금 그 무엇도 모르는 곳으로 향하고 있어.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나는 혼잣말을 지껄이는 미친 사람일까. 아니면 글을 쓰는 이성적인 사람일까.
2. 떠날 시간이야. 슬픔과 억압의 시간이기도 하지.
내 마음은 다치고 찢기고 무너졌어.
지평선에는 슬픔의 조각들이 있어. 어디든 슬픔뿐이야. 슬픔이 사방으로 흩어졌어. 인간 괴물들이 슬픔을 먹었지. 우리의 대지는 격전지가 되었어.
인간을 먹는 인간들이 어디든 있지.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3. 우리는 개처럼 되었지요. 무언가를 좇고 찾으려 하지만 우리에게 괜찮은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어요.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가시가 되었어요.
신이시여, 나는 조국에서 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어요. 조국의 새들은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 곳에는 피의 강이 흐르고, 부서진 인간의 심장이 흩어져 있습니다.
- 시리아 소년 무함마드의 일기 中 -
생명
지난 4월 15~19일 레바논 베카에서 만난 시리아 난민들의 삶은 어느 것 하나 온전하지 못했다. 인구 400만여명이 거주하는 레바논에서 시리아 난민은 40만명을 넘어선다. 현재 추세라면 전 세계 시리아 난민은 올해 연말 1000만명(해외 345만명, 시리아 내 680만명)으로 전망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보도했다.
과거 수차례 내전을 겪고 다른 국가의 전쟁 뒷마당이 됐던 레바논은 시리아 난민촌을 공식 인정하지 않는다.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이다. 레바논 사람들이 거리 어디서나 넘쳐나는 난민을 무조건 좋게 볼 리도 없다.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가시가 되었다.’ 난민 소년 무함마드의 일기장에 적힌 문장처럼 말이다.
그러나 열악한 난민촌에서도 시리아의 새 생명은 태어났다. 기자와 월드비전 관계자들이 찾아간 잿빛 대리석 공장 한 귀퉁이에서 아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버려진 대리석 공장에는 바람을 막아줄 창도 제대로 된 난방장치도 없었다. 3일 전 공장에서 태어나 아직 주름과 홍조가 지워지지 않은 아기 난민은 엄마 품에 안겨 잠을 잤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시리아에도, 레바논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 되었다. 붓기가 빠지지 않아 퉁퉁 부은 산모 옆에는 허술한 간이난로 하나가 있을 뿐, 바닥은 차갑고 냉기가 돌았다. 이 공장에 함께 사는 이웃집 여자들이 아기를 산모에게서 받아냈다. 가난한 난민들은 병원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짓다 만 건물 같은 이 공장을 방문한 건 지난 4월 17일. 난간도 없는 공장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들어서자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사탕이 든 복주머니와 필통을 건네자 소년은 팔을 쓱 내밀며 필통을 돌려주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
그제야 아이는 필통을 받아들었다. 연필을 쓸 일이 없다는 그 아이의 말은 필통을 열어 무언가를 쓰고 싶단 강한 열망으로, 상처로 들렸다.
죽음
태어난 생명들 사이로 더 많은 생명이 스러져간다. 2년이 넘는 시리아 전쟁으로 최소 9만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2월 28일 심장에 포탄 파편을 맞은 여섯 살, 두아도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됐다. 차가운 시신이 된 두아는 레바논 베카의 찬 대지에 묻혀 있다.
베카에서 만난 두아의 아버지 아흐마드는 숨진 딸을 잊지 못했다. 아흐마드를 만난 날은 비가 온종일 오락가락했다.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집 마당에서 헤어질 무렵 갑자기 빗방울이 굵어졌다. 그와 나는 처마 밑에서 나란히 서 있었다.
“이젠 괜찮은가요?” “타만, 타만(괜찮아, 괜찮아).”
아흐마드는 내리는 세찬 비에만 눈을 고정시킨 채 말했다. 슬픔을 숨기려는 슬픈 얼굴이었다.
시리아 바바아므르 지역에 살던 아흐마드 가족이 레바논으로 국경을 넘은 것도 딸 두아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2월 정부군은 바바아므르 지 역을 29일간 포위했고, 폭격 때문에 고향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당시 부모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두아와 친구는 우물가에 나갔다. 정부군도 반군도 아닌 여섯 살 두아는 우물가에서 포탄 파편에 맞았다.
뒤늦게 부모가 달려왔지만 손을 쓸 수 없었다. 사방은 검문으로 막혔고, 그 지역엔 정식 의료기관이 없었다. 아버지는 안전하고 의료시설이 갖춰진 레바논으로 가기 위해 서류를 준비했다. 48시간 동안 백방으로 뛰었다. 100달러를 들여 서류를 만들었지만 딸은 그새 죽음으로 향했다.
“아빠, 날 살려줘.”
우물가에서 쓰러진 두아를 아버지가 품에 안았을 때, 아이는 힘겹게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말을 할 수 없고, 숨을 쉬기 힘겹게 의식을 잃어갔다. 딸은 레바논으로 떠나기 전 시리아에서 눈을 감았다. 아흐마드는 작은 두아의 시신을 안고 국경택시(레바논과 시리아를 오가는 택시)를 탔다. 그리고 딸을 레바논에 묻었다. 산 하나를 넘으면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 닿을 수 있는 땅에.
상처
시리아 거리에서 토막 난 시체를 너무 자주 목격해 아무렇지 않게 됐다는 소년 우사마(15세). 지난 2월 피난 온 이후 벌어들인 소득이 겨우 75달러인 가장 마흐무드(38세). 이들은 한 가족이다. 레바논에서 마흐무드는 남보다 5달러라도 적은 임금을 불러야 건설 현장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자리라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다녀보지만 늘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곤 한다. 세 아이에게 무엇을 먹일 수 있을까. 가장의 어깨는 무겁다. 이들이 음식을 지속적으로 공급 받는 유일한 통로는 월드비전이 제공하는 푸드 바우처(Food Voucher)다.
다른 난민들도 저마다 상처를 새긴 채 살았다. 공습으로 두 손가락을 잃은 다섯 살 꼬마 자셈은 사고 이후 엄마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자셈의 이웃집에는 등에 파편을 맞고 걸을 수 없게 된 아이와 팔을 잃은 어린이가 살았다.
여성들은 군인들의 성폭행이 두려워 레바논으로 도망쳤다고 말했다. “정부군이 여자들의 옷을 벗겨 탱크 앞에 인간 방패막이로 세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100명의 여자들을 집단 성폭행했다더라.” “시리아 수용소에 잠깐 끌려갔던 한 남자 변호사는 열다섯 소녀가 당하는 걸 봤다더라.” 어쩌면 레바논에서 만난 수많은 여성 난민 중에 자신이 당한 성적 상처를 말하지 못한 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 아이의 엄마 아비르(37)는 베카에서 만난 난민 중 가장 상처를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아비르는 월세 200달러를 내고 휘발유 냄새가 진동하는 차고에 살았다. 증가하는 난민만큼 월세도 치솟았다. 그는 매일 레바논 베카의 자바다니산을 바라본다. 이 산만 넘어가면 시리아의 수도다.
치유
바논 베카에서 보낸 5일간 마음 놓고 웃어 본 곳은 학교뿐이었다. 월드비전이 마련한 아동교육심리센터(CFC)와 정규 교육을 가르치는 임시 학교에선 아이들이 웃고 떠들고 뛰어다녔다. 칠판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작은 공터에서 공놀이를 했으며, 수줍은 듯 손을 들고 일어나 발표를 했다.
한국에서 온 우리가 들어서자 한 남학생이 한국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안다고 했다. 춤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쭈뼛거리던 남학생은 다른 아이들이 박수를 치자 용기를 내 또 다른 친구를 일으켜 세웠다. 두 남학생이 춤을 선보이자 교실에선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교실은 국경을 초월한다. 인간을 먹는 괴물들이 존재하는 영토, 전쟁의 나라 시리아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그저 아이들일뿐. 세상 모든 아이들은 같았다. 아동교육심리센터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은 도화지에 그려진 나무 잎사귀마다 가족들의 이름을 적었다. “이를 닦자~ 얼굴을 씻자” 아랍어로 된 동요가 나왔다. 선생님은 교실을 다니며 그림을 살폈다.
혹시 전쟁통에 가족을 잃은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미술, 음악, 싸이코 드라마 등을 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혹시 전쟁통에 가족을 잃은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미술, 음악, 싸이코 드라마 등을 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월드비전 2013년 7+8월호 수록]
글. 박유리 국민일보 국제부 기자
사진. 박지희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