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책임 특별기고

여기는 동아프리카 남수단.

작년 8월, 한국월드비전에서 파견한 구호현장 전문가로 왔다가 지금은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남수단은 수십 년간 내전 끝에 작년 7월에 수단에서 분리 독립한 신생국가다. 워낙 환경이 척박하고 북수단의 극심한 차별 정책으로 전혀 개발되지 않은 데다 오랜 내전을 치른 직후라 긴급구호가 절실한 곳이다. 게다가 전쟁이 끝남에 따라 북수단에서 물밀듯이 넘어오는 수십 만 명의 난민들과 귀향민들까지 돌봐야 하기 때문에 구호 전쟁이라는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UN 통계는 이곳 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 말해준다. 인구 1,000만 명 중 식량 부족 인구가 470만 명, 5세 미만의 유아 사망률이 1,000명당 135명, 출산 중 산모 사망률일 1만 명당 205명. 무엇보다도 도시가 아닌 지역의 식수 보급률이 20%도 되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20%라는 통계는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현장에서 보면 2%도 안 돼 보이기 때문이다.

남수단 티엣 캐틀캠프에서 어린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한비야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 책임자

남수단 티엣 캐틀캠프에서 어린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한비야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 책임자

수도인 주바 주민들이야 나일강을 정수한 물을 사먹으면 되지만 시골 물 사정은 전혀 다르다. 운이 좋은 마을이라면 구호단체가 설치한 펌프로 깨끗한 지하수를 마실 수 있지만 대개 펌프까지 짧게는 30분, 길게는 왕복 3시간 이상을 걸어야 한다. 보통 어린 여자아이가 물을 긷는데 자기 몸집만 한 물통을 머리에 이고 가는 걸 보면 저러다 목이 부러지는 건 아닌가 걱정될 정도다. 그나마 비가 자주 오는 우기에는 물이 콸콸 나오지만 요즘 같은 건기에는 펌프 물줄기가 연필자국처럼 가늘어 물 한 통 받는 데 시간이 무한정 걸린다. 그러니 펌프가 있는 동네 사람들은 멀리서 물 길러 오는 다른 동네 사람들이 반가울 리 없다. 그래서 펌프가에서는 사소한 다툼이 대형 동네 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펌프 물을 구할 수 없는 주민들은 더러운 강물이나 웅덩이 물을 그냥 마신다. 시뻘건 흙탕물에 지푸라기나 모기 등 온갖 부유물이 떠 있어도 개의치 않는다. 그 물에서 사람들은 목욕하고 빨래하고 대소변을 본다. 그들이 키우는 소와 염소도 같은 물을 마시고 똥오줌을 눈다. 이렇게 오염된 물에는 십중팔구 기생충 알이나 수인성 전염병 병원균이 있고 살을 뚫고 나오는 기니아충 애벌레도 있다.

‘저러다가 죽으면 어쩌나?’ 동네 꼬마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 더러운 물을 마시는 걸 볼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이 나라 유아사망률이 매우 높은 이유도 고열을 동반한 설사의 원인이 되는 저런 물 때 문이다. 이들도 알고 있다. 이 물이 얼마나 더럽고 위험한지. 그러나 마실 물이라곤 이것밖에 없으니 어쩌겠는가? 물론 이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건 정부가 할 일이다. 그러나 남수단처럼 정부가 의지는 있으나 능력이 모자랄 때 국제사회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 세상 어떤 사람도 물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은 마시고 음식하고 씻는 물까지 포함 1인당 하루 15리터. 이 정도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려면 적어도 500명당 펌프 한 대씩은 있어야 하는데 이 곳의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남수단 티엣 캐틀캠프 웅덩이에 물을 길러온 아이

남수단 티엣 캐틀캠프 웅덩이에 물을 길러온 아이

남수단 티엣 캐틀캠프 웅덩이에 물을 길러온 아이

깨끗한 물을 마을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는 한비야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책임자

깨끗한 물을 마을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는 한비야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책임자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티엣 보건소에서 남수단월드비전 물 전문가 물루게타 씨와 물 관련 질병에 대해 논의 중인 한비야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 책임자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티엣 보건소에서 남수단월드비전 물 전문가 물루게타 씨와 물 관련 질병에 대해 논의 중인 한비야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 책임자

아프리카는 원래 물이 부족하고 기후 변화의 직격탄까지 맞고 있으니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다. 적어도 동아프리카는 나일강을 비롯, 수많은 호수와 풍부한 지하수가 있다. 이런 수자원을 잘 활용만 하면 얼마든지 살인적이며 만성적인 물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각 나라 정부와 국제사회와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하기만 하면 말이다.

현장에 가면 어디선가 떼를 지어 나타나서 “가와자 가와자(백인)” 합창을 하며 하루 종일 날 따라다니는 녀석들, 관심을 끌고 싶어 내 팔다리를 툭툭 치며 입이 찢어져라 활짝 웃는 장난꾸러기들. 내가 “치밧(안녕)” 하고 악수를 청하면 온몸을 흔들며 좋아하는 이 꼬마들이 깨끗한 식수가 없어서. 그까짓 설사 때문에 죽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 참으로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너무나 미안한 일이다. 현장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결심이다.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혀가 쏙 빠지도록 일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나 몰라라 할 리가 없다고 굳게 믿으면서.


한비야/ 남수단 월드비전 긴급구호 총책임

한비야는 2001년부터 2009년 6월까지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말  퇴직 후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 터프츠대 플래처스쿨에서 ‘인도적 지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11년 UN CERF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으로 위촉됐으며 같은 해 11월 IDHA (International Diploma Humanitarian Assistance) 인도적 지원 고급 교육과정 정식강사 및 한국월드비전 초대 세계시민학교 교장으로 임명됐다. 2012년 10월부터 2013년 2월까지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 책임자로 재직 중이다.


글. 한비야 남수단월드비전 긴급구호 총책임
사진. 최미정 홍보팀

펌프 한 대를 설치, 관리하고 지속적인 주민교육을 하는데 드는 돈은 1,000만원 정도. 한 명에게는 큰 돈이지만 한 사람이 1만 원씩 1,000명만 힘을 합한다면 수천 명의 마을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