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위의 나눔 전도사

내 택시의 뒷 좌석 앞에는 모금통이 있고,  모금통 앞에는 새카만 아프리카 아이의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사진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습니다.  “카만가 윈프레드-제가 후원하고 있는  아프리카(말라위)의 어린이입니다.”   택시를 타시는 손님 중에는  “우리나라에도 밥 굶는 아이들이 많은데,  알지도 못하는 그 먼 나라 아이까지  굳이 후원을 하십니까?”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가 바로  저 아이만 할 때 6.25전쟁이 일어나서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외국의 원조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에 갔다 오면 냄비를 들고  동사무소에 달려가서 옥수수 죽을  배급 타다가 끼니를 때우곤 했었지요.  그 때 우리나라는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까?  그 도움을 60년이 지난 이제사  되갚으려는데, 제가 하는 것이 이자나  되겠습니까?”하고 반문한답니다.   카만가가 4살이 되던 해 생일선물로  장남감과 학용품, 그리고 맨발의 모습이  생각나서 예쁜 운동화도 한 켤레 넣어서  보냈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저는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답니다.  카만가의 동네에 맨발의 아이가  어디 카만가 한 명 뿐이겠습니까?  그 생각을 하니 내가 얼마나 경솔했던지  후회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동대문 신발상가로  가서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슬리퍼를  50켤레 사서 보냈습니다.  이 후 연말이면 학용품을 보내도 50세트,  옷을 보내도 50벌씩 보내고 있습니다.  나눔은 이처럼 하면 할수록 모자람을  느끼나 봅니다.  카만가 아동 후원자 김형권님의 글

이 후 연말이면 학용품을 보내도 50세트, 옷을 보내도 50벌씩 보내고 있습니다. 나눔은 이처럼 하면 할수록 모자람을 느끼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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