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르의 수도 딜리에서 월드비전 바우카우 사업장으로 가는 길.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 길 아래로 열대 지방 특유의 아름다운 초록빛 바다가 펼쳐지고 길가에는 백단목 수십 그루가 신비한 자태로 낯선 방문자들을 바라본다. 머리위로 낮게 흐르는 구름들은 산자락에 지붕처럼 걸려 있다. 도저히 불과 10년 전에 끔찍한 전쟁(?)이 있었던 곳이라고 상상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용한 하늘 아래 한 꺼풀만 들추면 아직 아린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땅 동티모르. 아시아 한쪽 모퉁이의 작은 섬나라는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 발 벗어나 있다.
뜨거웠던 독립 , 힘겨운 시작
인도네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티모르 섬은 서쪽으로 인도네시아(서티모르)와 동티모르로 나뉘어져있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동티모르는 또 다른 뜨거운 투쟁을 통해 독립을 이뤄냈다.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만 한 땅에 사는 약 85만 여명의 사람들이 이제 막 10살을 넘긴 신생 국가의 주인들이다. 이 땅의 주인들은 독립을 이루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약 300년간 포르투갈 지배 끝에 인도네시아의 침공을 겪었으며 이후 25년간 인도네시아 군의 점령이 지속되었다.
1991년, 국제연합의 감시 하에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가 진행 되었지만 동티모르는 꿈에 그리던 독립 대신 인도네시아와 친-인도네시아 동티모르 군대가 1,400명의 무고한 동티모르인들을 살상하고 300,000명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드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 사태는 결국 국제연합 평화유지군 파병이라는 국제적 대응을 불러 일으켰고 우리나라 역시 이때 상록수부대를 파병했다.
동티모르의 내일을 살아갈 오늘의 아이들
사업장에 도착한 후 우리는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걸어오는 한 소녀를 만났다. 동티모르에서 처음으로 만난 어린 아이였다. 4살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몸집의 마르셀라는 여섯 살이라고 했다. 만성영양실조로 인한 성장부진 때문이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르셀라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적절한 시기에 모유와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남겨진 4남매가 어렵게 채우고 있었다. 요리와 집안일을 맡아 하고 있었지만 서투른 아이들의 손길은 집안 곳곳에 엄마의 빈자리를 더욱 크게 만들어 놓았다. 오늘 점심은 옥수수와 카사바. 10살 된 둘째 오빠를 도와 마르셀라는 물을 떠오기로 했다. 하지만 또래보다도 한참 몸집이 작은 마르셀라에게 3리터나 되는 플라스틱 물통은 숨이 차도록 무겁기만 하다.
약하지만 포기하지 않아요
독립을 이룬지 10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만나고 있는 2013년 12월의 동티모르는 여전히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영양실조 비율이 43%에 이르는 약하고 아픈 나라였다. 바우카우 사업장에서도 역시 영양실조는 가장 큰 이슈로 남아 있다. 사업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끼니로 삶은 카사바와 반찬 없는 흰쌀 죽을 주로 먹는다. 집 앞 나무에서 망고를 따먹는 것이 유일한 간식거리. 가끔은 매미를 잡아 장난감 대신 한참을 갖고 놀다가 다 놀고 난 후에는 낼름 입안에 넣어 씹어 먹는다.
다양한 영양 섭취가 불가능한 아이들은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나이에 비하여 키가 작고 외소하다. 0세부터 2세 사이의 중요한 시기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 아이는 성장부진을 겪게 되는데, 이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 성장이 또래 아이들에 비하여 현저하게 뒤처지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월드비전은 이곳에서 1996년부터 긴급구호 및 난민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불안정한 치안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사업을 진행한 결과 현재는 3개 지역개발사업장(ADP)에서 보건, 교육, 그리고 소득증대 사업을 진행 중이다. 보건소에 도착하니 아기와 함께 온 어머니들이 줄을 서있다. 다행히 정부에서 24개월 미만 유아들에게 영양 죽을 보급하고 있지만, 수량이 항상 턱 없이 모자라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월드비전은 어머니들에게 마을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영양가 높은 식재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조리법을 교육하는 영양 사업과, 산모와 영유아에 집중하는 모자보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구 전체의 65%가 25세 미만이고 37%가 14세 미만인 동티모르. 이 젊은 신생 국가의 먼 미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지금은 작고 어리지만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스스로를 완전히 책임질 수 있을 만큼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나면 동티모르 역시 지금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안전한 모습으로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런 변화를 믿는 마음으로 오늘, 동티모르 월드비전은 다시 힘찬 하루를 시작한다.
글+사진. Grant&PNS팀 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