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월드비전 ‘후원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안성훈 후원자 수기 전문

지난해  11월 후원을 하면서 느낀 소소한 기쁨과 보람 그리고 변화와 감동이 담긴 후원수기를 소개하는 ‘제2회 월드비전 후원수기 공모전’ 을 열었습니다.  짧은 응모기간에도 불구하고 80통이 넘는 사연이 도착했습니다.

52만여명 후원자의 저마다 다른 사연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보석상자를 열어본 것처럼 설레고, 또 누군가의 일기를 들춰 본것처럼 짜릿하기도 했습니다.

월드비전 홍보팀과 외부 전문가로 이뤄진 4인의 심사위원은 심사숙고 끝에 수상작을 선정했습니다.

수려한 글솜씨가 아니더라도 진정성이 느껴지고, 또 참신하고 매력적인 소개 그리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완성도 있는 글이라는 기준을 갖고 선정한 수상작을 발표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소중한 이야기를 적어 보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월드비전은 언제나 후원자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비록 이번 공모전에서 수상하지 못했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월드비전과 아동을 향한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오른쪽부터)   6년간 후원해 온 피카두 압둘세메드,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면서 후원을 시작한 여동생 피카두 살람,  올해  1월 후원을  시작한 아베베 제네바드와  함께

(오른쪽부터) 6년간 후원해 온 피카두 압둘세메드,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면서 후원을 시작한 여동생 피카두 살람, 올해 1월 후원을 시작한 아베베 제네바드와 함께

내가 너를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살게 만든다. 너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 또한 없었을 것이다.

5년 전 너와 처음 인연이 되었던 날, 내 머릿속엔 온통 세상에 대한 원망과 주변 사람들이 나를 버렸다는 괴로움에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한 여름 뜨겁게 열광했던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 잠을 자던 중 나는 아프다는 소리 한번 내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밤새 끙끙 앓고 온 몸이 빠르게 굳어 갔다.

출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 일어나지를 않자 어머니가 나를 깨우러 방에 들어왔을 때, 난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어머니의 울부짖는 소리를 11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가고 하루 이틀, 그리고 한 달이 넘게 온갖 검사를 다해도 내 몸이 왜 그렇게 통증이 심하고 서서히 굳어 가는지 병원에서도 알 수 없었다.

병원 생활은 더 많은 시간이 지났고, 내가 얻은 병명은 원인을 알 수 없어 고칠 수 없다는 난치성 희귀질환인 “강직성 척추염” 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척추로부터 시작해 온 몸의 뼈 마디마디가 염증으로 가득차서 붓고,

모든 뼈가 서서히 굳어가며 결국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병.

나와 가족에겐 절망이었다.

최우수상을 받은 안성훈 후원자

최우수상을 받은 안성훈 후원자

그 후로 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축구를 좋아해 주말마다 친구들과 운동을 할 정도로 건강했는데, 병을 얻은 뒤로는 온몸이 굳어 가족들의 도움 없이는 병원 침대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수개월의 치료를 받고 퇴원을 했지만 내 병은 나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나의 마음과 정신도 굳어버린 몸처럼 아주 빠르게 병을 앓기 시작했다.

병을 앓고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병을 앓기 전, 사업을 할 당시 주변에 그 많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떠났고, 친구들과 사랑했던 사람도 어느새 연락이 끊겼다. 아프고 난 뒤에 내 몸과 더불어 정신은 온통 세상을 원망하고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 정리를 다 마치고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날이었다. 너와 처음 인연이 되었던 날이….

어머니에게 남기는 마지막 편지를 내 방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강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파르르 떨며 가던 중, 옆자리의 여자분이 읽고 있던 월드비전 책자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힐끔거리다 그 여자 분이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갈 때 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따라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이고 그 여자 분은 내게 말없이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사업을 하다 많은 빚을 지게 되고 몸은 희귀병을 앓게 되어 더 이상 내게는 꿈도, 희망도 없었지만 이름을 알 수 없던 그 여자 분이 건네주었던 분홍 자수가 놓인 하얀 손수건과 월드비전 책자 한 권이 나를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했고, 어머니는 말없이 문을 열어주고는 따뜻한 밥을 차려 주셨다. 그리고 나는 너와의 인연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살기 시작했다.

빚이 너무 많아 감당 할 수 없을 만큼 버거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시작했다. 병을 앓고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을 할 수 없어 빚은 더 쌓여갔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집에서 워드 작업이나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돈을 벌면서 조금씩 빚을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후원하는 에디오피아 소년 피카두를 위해 한 달에 3만 원…. 그 돈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달 25일을 향해 나는 지난 5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합병증이 많이 생겨 너무 많은 병원을 다니고 있으며, 하루에 여섯 번 이상 약을 먹어가며 몸을 지탱하고 있지만 매달 25일을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아서 지난 5년의 시간을 버텨왔다. 내 몸은 지금 5년이 지나니 몸 상태는 더 좋지 않지만 오히려 정신은 더 맑으니 몸 아픈 것은 이제 참을 만하다. 약이라도 사먹을 수 있는 돈이라도 벌고 있으니 잘 견디며 산다. 하루에 두 개, 많게는 세 가지 일을 하며 빚을 갚아 나갔다.

지금은 세상의 모든 것들에 다 감사하다.

만일 내가 이 난치성 희귀질환인 “강직성 척추염”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난 못난 나를 깨닫지 못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칠 수 없지만 나의 병든 몸마저도 감사하다.

한강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월드비전 책자를 보고 있던 그 여성 분, 그리고 내게 건네준 손수건 한 장, 그 많은 빚을 한 달에 몇 십 만원씩이라도 꾸준히 갚아나가니 나의 진심을 알고 기다려 준 사람들, 온 몸이 퉁퉁 붓고 허리가 꾸부정해서 힘을 쓰지 못하지만 일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들, 그리고 내가 매달 25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매달 나의 후원을 기다려준 에디오피아 소년 피카두, 그리고 월드비전.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이 내게 있을 수 있음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공부하는 모습을 보내온 피카두

공부하는 모습을 보내온 피카두

안성훈 후원자의 후원아동 사진과 편지들

안성훈 후원자의 후원아동 사진과 편지들

지난 5년, 나의 에디오피아 소년 피카두. 너와 인연을 맺어 오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너를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살게 했다. 너와의 인연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매달 25일 내가 너에게 후원금을 내는 날이 아니라 피카두, 네가 나를 매월 25일에 다시 태어나고 살게 해 주었다. 나는 이제 2014년 2월이면 매월 25일, 또 나를 살게 해 줄 친구를 한 명 더 만나게 될 예정이다.

지난 5년이라는 시간동안 피카두가 있었기에 나는 잘 버티며 많은 빚을 갚을 수 있었고, 어느새 빚이 조금 줄어서 힘내며 살게 해 줄 한 명의 친구를 더 후원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그 친구가 피카두와 함께 나를 더 힘내며 살게 해 주겠지. 내 몸은 좀 더 힘이 들고 빚을 다 갚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나는 이제 알고 있다. 아주 멀리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에 있는 소년 피카두에게 매월 25일에 후원하는 3만원의 후원금이 단순한 후원금이 아닌 내가 살 수 있었던 내 생명의 값어치임을….

진정 내가 너를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살게 만든다. 나의 후원을 받아 준 에디오피아 소년 피카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월드비전지 2014년 3+4월호 수록]

사진/ 오연경 재능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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