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싶은 아프리카 아이들
– 북부우간다/케냐 다답 난민촌
월드비전 홍보대사 이광기와 그의 친구들 플루티스트 송솔나무, 서양화가 문형태, 사진작가 신미식. 네 명의 친구들이 7월 초 아프리카 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간다와 케냐의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정상에 위치에 있는 그들이 아이들을 만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함께 꿈꿀 수 있어서 아름답고 특별했던 10일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전쟁의 상처를 이겨낸 희망의 작은 학교 (북부 우간다/ 아촐리냑 초등학교)
아프리카의 수많은 전쟁 중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우간다 내전. 그 내전이 지나간 자리 중에서도 특히 열악한 북부우간다 지역 아촐리 마을의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야외수업인가? 라고 생각하며 다가간 그곳엔 건물이 없었다. 하지만 나무그늘 밑 교실도, 피할새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도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열정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최근 주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룬 것도 사실이지만 국민들의 생활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기에는 아직도 부족하다.
우리는 한국에서 왔단다
“안녕? 나는 이광기라고 해” 자신과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의 방문에 처음엔 쭈뼛 대던 아이들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이름을 묻는다. 이광기씨는 아이들과 함께 구구단을 외우고,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의 간단한 한국어 대사를 가르쳐주면서 점차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처럼 친해져 갔다. 연신 사진을 찍던 신미식 작가는 밤새 현상한 사진을 가지고 우간다 시골 학교에 사진 전시회를 열었다. 저마다 사진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어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자기 얼굴을 찾은 아이들에게서 함박웃음이 번졌다.
꿈꾸는 작은 음악회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싶어요.” 만나는 학생학생들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마다 비슷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학교에 나와 공부하는 것, 간단하지만 이 아이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과 헤어지는 날, 플루티스트 송솔나무 씨가 아촐리 학교 학생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준비했다. 3가지 악기로 연주를 들려준 후 그가 말했다. “첫 번째 악기는 아주 비싼 고급 플룻이에요, 두 번째 악기는 화장실에서 쓰는 파이프 관으로 만들었어요. 세 번째 피리는 아프리카의 나무로 만든 아주 저렴한 악기에요. 어떤 소리가 가장 아름다웠나요?” 아이들이 세 번째라고 외쳤다. “맞아요. 얼마나 비싼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도 꿈꿀 수 있다면 이 자그마한 피리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케냐 다답 난민촌에서 꿈꾸는 미래
12인승 소형비행기를 타고 우간다에서 케냐 다답 지역으로 넘어왔다. 다답 난민촌은 소말리아의 내전을 피해 케냐로 이주 온 40만명의 소말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난민촌이다. 우간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박한 웃음에 비해 긴장된 표정이 역력한 다답 난민촌 사람들. 조국을 두고 타국에서 난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답답함과 슬픔이 황량한 사막에 그대로 펼쳐져 있는 듯했다.
“나의 꿈은 의사 되는 거예요.”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히보는 파란색 히잡을 쓴 비슷한 또래 여자아이들 중 단연 눈에 띄는 아이였다. 히보는 하가데라 초등학교의 전교 1등 학생이었다. 코란을 공부하는 학교밖에 없는 소말리아에서 오직 공부가 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와 헤어져 이모를 따라 케냐로 온 아이, 히보의 꿈은 의사가 되어 자신처럼 약하고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그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를 모두 더하면 무엇이 될까요?
다음으로 찾은 곳은 다답 난민촌에서 가장 큰 하가데라 캠프의 센트럴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벽화를 그리기로 했다. 벽에는 한국에서 찾아온 화가, 배우, 사진작가의 모습과 함께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채워졌다. 남자 아이들 대부분은 선생님, 여자 아이들의 상당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시기에 월드비전을 통해 청소년 리더십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었다. 마을의 평화를 되찾기 위한 사업이었다. “그 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과도기였어요. 모든 것에 새롭게 적응해야 했죠. 가치관도 새로 세워야 했구요. 참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월드비전에서 일하면서 혼란 속 제 인생에서 다른 희망과 가능성을 보기 시작했어요.”
벽화를 다 그린 후 아이들에게 이 벽화 속의 사람들을 다 더하면 무엇이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우정, 친구, 꿈 등등 예상했던 대답 외에 가슴에 박히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시민권”. 나라가 없는 그 아이들에게 삶은 절망일 수 있다. 그래서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고 소망을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형태 작가의 말처럼 척박한 환경에서도 그들이 공부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것이 난민촌 아이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글. 한국 월드비전 미디어/기업팀 권진경 대리
사진. 신미식 작가 재능기부
2014년 8월 21일(목)~22일(금) 저녁 7:50~8:40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