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디지털 성착취 및 학대 근절, 아동·청소년 중심으로 접근하라

청와대 국민청원 개설 이래 최다 청원수를 기록한 디지털 성범죄(N번방 사건)에 대해 정부가 답변을 발표했다. 관련자 및 가담자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와 특별 수사본부를 통한 집중 단속, 범부처 디지털 성범죄 대응 체계 및 양형 기준 강화, 피해자 지원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월드비전은 이 사건을 사람의 취약한 상태를 이용하여 착취하는 명백한 인신매매이자, 아동·청소년에 대한 디지털 성 착취 및 학대로 규정하고, 본 사건의 수사와 해결 과정에 있어 피해자인 아동·청소년 중심으로 접근할 것을 아래와 같이 강력히 촉구한다.

 

1) 성폭력 피해 해결에 있어 피해자 보호를 우선시하고 특별히 아동·청소년이 지닌 특성을 고려하라

국제사회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대함에 있어 피해를 당한 사람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생존자 중심 접근(survivor-centered approach)을 권고하고 있다. 생존자 중심 접근의 핵심은 피해 당사자의 참여를 통해 이들의 안정과 회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해결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본 사건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음에 따라 피해자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이미 각종 유해물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본 사건 관련 키워드가 상위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영상 유포에 따른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통해 피해자들의 신변을 철저히 보호하고 이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두려움이 없도록 조치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또한 피해자 74명 중 16명이 아동·청소년으로 밝혀진 만큼 가장 중요한 발달 시기에 피해를 입은 이들의 특별한 필요를 고려해야 한다. 특별히 아동·청소년기에 겪은 가학적인 성범죄의 결과는 신체적, 심리적으로 전 생애에 걸친 영구적 손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피해 아동·청소년에게 치료적인 지원, 특별히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급하며, 이 모든 과정에서 피해 아동·청소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생존자 중심 접근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2)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처벌과 양형 기준을 더욱 강화하라

사회적 지지체계가 약한 아동·청소년은 유인, 협박에 더욱 취약하여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도화된 수법의 성범죄가 늘어가고 있다. 또한 성범죄에 대하여 지나치게 가벼운 양형 기준은 이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여성가족부 조사 자료에 의하면 2017년 기준으로 불법 촬영 및 유통을 포함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중 64.2%가 집행유예를 받았고,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6.4%에 그쳤다. 그나마 징역형이 내려지더라도 평균 형량은 1년 7개월에 불과했다.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성폭력 피해자가 갖는 수치심과 낙인감을 가해자로 옮겨가게 함으로써, 신고를 주저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을 이루는 과정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동자뿐 아니라 이에 관련된 모든 이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특별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하며 보다 높은 양형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피해자 중심의 접근일 뿐 아니라 이러한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높여 재발을 방지하는 강력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3) 디지털 성폭력에 노출된 아동·청소년의 실태를 조사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라

국내법과 제도, 사회 인식은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아동·청소년, 특히 10대 청소년들은 이러한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번 사건의 직접 피해자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접하고 심리적 타격을 입은 수많은 아동·청소년들도 간접적 피해자로 간주해야 한다. 성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만 가르치고 가해 행동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지 않는 성폭력 예방 교육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아이들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당장 벌어진 사건의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디지털 성범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 실태 및 피해를 전수 조사하고 이들이 체감하는 위험성에 대해 깊이 있는 목소리를 듣기 위한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다크웹 등 지나간 사건 등을 통해 뿌리 뽑지 못한 위험이 결국 또 다른 성 착취 및 학대 사건을 낳았고 우리 사회는 이번에도 16명의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74명의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들은 또다시 취약한 아동·청소년들을 표적으로 삼을 것이며, 사회적 지지체계가 약한 아동·청소년들은 더욱 큰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해결과 회복에 아동·청소년 중심의 접근을 취하고, 철저한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을 선례로 남기는 것이 유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고 피해 아동·청소년들의 존엄을 회복하는 최선의 길이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왜곡된 성 문화, 미비한 법과 제도, 디지털 성폭력에 둔감한 시민의식을 개선하여 모든 형태의 디지털 성폭력으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2020. 3. 25
한국 월드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