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태풍 하이옌 이후 2년, 필리핀
세계의 지붕이 흔들렸다. 강도 7.9 강진의 아비규환 속에서 시간의 흐름조차 의식하기 어려운 한 달이 흘렀다. 세계 각지에서 도움의 손길이 모여들었고, 한 달 동안 신속하게 긴급구호 활동이 진행되었다. 천둥 같은흔들림 속에 휘청거린 삶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야 하는 오랜 작업의 시작이었다.
최근 들어 재난은 더욱 복합적인 형태로 닥쳐오고 그에 따라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구호활동의 필요성도 높아졌다. 21세기 우리가 겪었던 재난 ‘2005년 인도양 쓰나미’, ‘2010년 아이티 대지진’, ‘2013년 필리핀 태풍 하이옌’ 의 현장이 그랬다. 한때는 전 세계를 들썩거리게 했던 대규모 재난들. 그곳에서 월드비전은 재난 후에 남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더 낳은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구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통합재난 관리 속에서 재건복구가 진행 중인 그 현장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멀리가기 위해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태풍이 지나가는 나라 필리핀. 한해 평균 20개의 크고 작은 태풍이 필리핀을 뒤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그해의 태풍은 더욱 큰 비극을 몰고 왔다. “가족들 시신을 제대로 수습할 겨를도 없이 남은 가족들의 음식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봤어요.” 필리핀 중심부를 강타한 반경 400km, 시속 200km의 슈퍼태풍! 약 6,200명이 사망했고 천여 명이 실종됐다. 필리핀 44개 주에서 1,400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고 4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뒤 초토화된 야자 농장을 마주했을 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감정이 북받친다는 오스카씨. “내가 가진 모든 걸 빼앗아갔어요. 그 상실감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몇 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제게 일어난 일들을 인정할 수 있었어요.” 그의 얼굴 위로 수많은 감정이 오간다. 하이옌 발생 직후 초반 3개월 간 월드비전은 ‘긴급구호’ 활동을 펼쳤다. 약 76만 명을 대상으로 긴급구호 물품을 지원하고 현장의 필요에 따른 사업 분야에 집중했다. 다음 9개월간은 ‘재건복구’사업이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재난대비와 재난경감교육 등이 함께 이루어졌다.
“하이옌의 특징은 예측 가능한 재난이었다는 겁니다. 뱅골만 지역의 싸이클론과 필리핀의 태풍같은 재난은 매년 예측하지만 피해가 반복되고 있어요. 재난 대응력이 취약하다는 의미죠. 실제로 하이옌 이후 2014년에도 태풍 하구핏이 덮쳤어요. 재난 예방이나 재난경감사업, 조기경보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재난 예방은 오랜 투자가 필요한 일입니다. 사회 인프라 구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에요.” 강도욱 한국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이 말했다.
하이옌과 같은 대형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대부분 건물이 무너지고 생계수단이 파괴되는 등 눈에 보이는 피해들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은밀하게 아동들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 월드비전 아동권리 고문 에리카 홀(Erica Hall)은 “하이옌과 같은 초대형 재난이 일어나면, 아동들이 부모나 가족들과 분리되면서 아주 위험한 상황에 노출됩니다. 예를 들면, 인신매매, 불법입양, 갱단과 같은 범죄그룹의 표적이 되지요.” 생존자들이 집과 재산을 잃고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생계수단을 잃으면서 인신매매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월드비전 인신매매 예방 프로젝트
일반적으로 태풍 생존자들이 인신매매에 연루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적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초기 긴급구호 이후 필리핀 재건복구 단계에서 월드비전은 이러한 가정들이 부정한 수단을 선택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생계수단을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 소득창출의 기회를 제공하고 인신매매의 위험과 피해에 대한 인식제고 활동을 동시에 진행한다.
항구도시로 대도시와 접근이 쉬어 유독 인신매매의 위험이 높은 오르목 시에서도 약 1,475명을 대상으로 인신매매 예방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유기농법을 교육하고, 종자, 가축 등을 지원했으며 모든 주민들이 인식제고 훈련에 필수로 참여하게 된다. 인신매매 거래자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입었을 때 연락할 수 있는 핫라인을 개설해 언제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학교에서는 2014년 말까지 10개 학교 학생 1,419명이 인신매매 방지교육에 참여했고, 주민들이 인식제고 활동에 참여했다. 주민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또한 모든 구호활동 지역에 설치되는 아동쉼터(CFS:Child Friendly Space) 역시 인신매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안전망 역할을 한다.
앞으로 수년간은 태풍 하이옌이 할퀴고 간 상처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생은 계속된다. “지나간 과거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일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었어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시 한 번 시작해보는 것’입니다. 월드비전은 우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와 지지를 준 버팀목 같은 존재예요.”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은 오스카 씨는 언젠가 모든 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저앉아 있을 수 만은 없다고 했다. 그들의 믿음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재난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회복하는 날을 위해 우리는 조급함을 버리고 먼 여정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