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친선대사 특별기고
총소리, 사이렌 소리, 낙하산 투하… 정신없는 전쟁의 아비규환. 혼돈의 장면 뒤로 편안한 조명이 무대를 몰아가며 선명회합창단의 ‘친구를 위해 친구와 함께’ 합창 큐. 24시간을 굶으며 지구촌 친구들의 고통에 함께하겠다며 모인 청소년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그 눈물이 고마워 울고, 지금 이 순간에도 촌각을 다투며 죽음과 싸우는 아이들 생각에 울고….
1991년 이름도 생소한 월드비전이란 곳의 직원 몇 명이 찾아와 기아체험이라는 행사를 함께 준비해보겠냐며 조심스레 제안했을 때, 왜 그랬을까요? 애초부터 그건 내 일이었던 것처럼 덥석 수락을 하고, 총 연출을 맡아 스폰서부터 무대연출, 연예인 섭외, 무대 큐시트까지 챙겼던 기아체험의 모든 무대를 빠짐없이 기억합니다.
이제 막 연기자로 이름을 알리며 제법 유명세를 타기 시작할 바로 그때 월드비전을 만났으니, 어쩌면 내 연기 인생은 월드비전 친선대사 인생과 함께 출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습니다. 살아오는 내내 나를 향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훈훈하고 따뜻해서 ‘나는 늘 사랑의 빚이 많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나로 인해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이 있다면 빚을 갚는 마음으로 나섰습니다.
그곳이 이란 지진 현장이든, 르완다 내전 현장이든, 인도 쓰나미 현장이든, 월드비전이 하는 일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일에 나의 달란트가 필요하다면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빚쟁이 박상원은 월드비전 덕분에 나름 빚을 많이 갚았습니다. 아직도 남은 빚이 많아 평생을 두고도 못 갚겠지만, 그러니 평생을 이렇게 월드비전과 함께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돌려주고, 돌려주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멈출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얼굴이 스쳐갑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땀 흘렸던 월드비전 식구들, 현장에서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 특히 중학생 나이에도 아홉 살 남짓 어린이 체구였던 북한 아이들을 만나 서럽고 속상했던 아픔은 지금도 여전히 짙게 전해집니다.
20년 차 월드비전 근속직원이라 자부하는 나는 내 사랑하는 월드비전 후배들이 이전의 선배들보다 더 큰 마음과 열정으로 세상의 어려운 이들을 향해 가슴을 활짝 열기를 바랍니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끌어안기를 바랍니다. 더욱 전문적이고 세심하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응답하기를 기대합니다. 수천억의 이익을 창출한다는 대기업 회사원들이 할 수 없는 일인 ‘나를 위함을 내려놓고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일’의 최전선에 서 있는 월드비전 식구들이 전사처럼 투철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전진하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고 응원합니다.
그리고 ‘감사’라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우리 후원자님. 혹시라도 입바른 말로 전해질까 수선스럽게 늘어놓기 조심스러울 정도로 후원자님이 만들어나가는 세상의 변화는 놀랍고 따뜻합니다. 월드비전 친선대사,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입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서로 기대어 손잡고 왔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고맙습니다. 그렇게 나는 참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