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1살 훈이(가명)와 9살 보리(가명)의 엄마입니다.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도 제대로 다녀볼 수 없었습니다. 간신히 내 이름 석자, 우리 아이들 이름을 쓸 수 있지만, 글을 모른 채 세상을 사는 것이 녹록치 않습니다. 양껏 먹어본 적 없고, 학교도 제대로 다녀본 적이 없었기에 우리 아이들만은 남부럽지 않게 좋아하는 것 먹이고 잘 교육시키고 싶었습니다. 오로지 그 뿐, 다른 것은 바라본 적 없습니다.
항상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
소중한 제 아이들은 지적장애가 있습니다.
그림책 보는 것을 좋아하는 훈이와 감수성이 예민한 보리. 아이들에게 그림 책을 보며 읽어주고 싶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은 일도 해줄 수 없는 나는 못난 엄마입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마음 같아선 좋아하는 고기 원 없이 먹이고 싶은데, 내줄 수 있는 것은 김치와 멀건 어묵 국뿐입니다. 때론 저도 입맛이 없는데, 한창 자라야 할 우리 아이들은 오죽할까요.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이 야속하다가도 이내 안쓰러워 고개를 돌립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남편
작년 6월, 남편이 길을 걷다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혈액암 4기. 항암치료 받을 때마다 입에서 살 타는 냄새가 난다며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을 곁에서 보살펴주지 못했습니다. 제게는 잠시라도 떨어지거나 다른 곳에 맡길 수 없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항암 치료를 잘 견뎌내고 집에 돌아와 함께 생활하길 기대했는데, 암세포는 남편의 척추신경을 건드려 하반신이 마비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지쳤는데, 왜 유일한 버팀목이던 남편마저 아파야 하는 걸까요.
그래도 남편이 살아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어떻게든 우리 가족을 위해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남편이 참 고맙고 안쓰럽습니다. 아픈 남편을 잘 보살피고 힘을 줘야 하는데, 오히려 전화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는 저를 위로합니다. ‘훈이 엄마, 고생시켜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지독한 곰팡이와 뱀이 나오는 집
골목 틈에 위치한 저희 집은 성한 곳이 없습니다.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으며 면역이 약해진 사이 혹여 나쁜 병균에 감염될까 여기저기 핀 곰팡이를 없애보려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괜찮을까 싶어 동사무소에서 받은 벽지를 한여름에 혼자 도배를 했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온 집안에 가득한 곰팡이는 제 수고와 바람을 비웃는 것만 같습니다.
얼마 전, 아이들과 집에 있는데 뱀이 나왔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조차 없었습니다. 뱀이 나타난 것만 두어 번, 행여 아이들이 뱀에 물렸을 때 ‘뱀에 물렸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 아프다고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가벼운 일이 심각해지지는 않을 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며 가슴을 졸입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위협적인 순간들을 나 혼자 성치 않은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이겨낼 수 있을 지 두렵기만 합니다.
좋은 날을 바라는 것 조차 욕심일까요
누구 하나 저한테 ‘고생한다, 좀만 참고 기다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번도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지도 않았고, 무엇을 빌려도 배로 돌려주려 노력했는데 왜 이렇게 나한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들과 누워있는 남편, 이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해 내기가 사실은 버겁습니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 오겠지 하면서 버티는데,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바람조차도 욕심일까요. 소원이 있다면, 아이들 아빠가 얼른 나아서 예전처럼 집에서 네 식구 함께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 뿐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함께 살아보려 애쓰는 훈이네 가정이 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