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7일부터 1박 2일 동안 경기도 양평에서 ‘기아체험 가족캠핑’이 열렸어요. 20 가족이 자연 속에서 빈곤국가 어린이의 하루를 체험했답니다. 뜻깊었던 참가자 2분의 소감문을 싣습니다.

 “20년 뒤엔 우리 애들이 엄마 마음 알겠죠?” (오O진 참가자)

저는 20년 전, 고등학생 때 ‘훼민24(Famine24)’가 처음이었어요. 그땐 물만 마시며 24시간 굶었는데 굉장히 힘들었고, ‘친구를 위해~ 친구와 함께, 훼민 투웬티포~’라는 노래 불렀던 게 기억나요. 그때 경험 덕분에 기부하는 습관이 생겨 지금껏 이어오고 있어요.

지금은 중1 아들, 초5 딸, 초1 딸을 둔 세 아이 엄마예요.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엄마아빠 월급과 가계경제를 궁금해 하더군요. 어느 날, 헌금과 기부 얘기를 하다 큰아들이 ‘우리도 힘든데 왜 기부를 해요?’라고 물어 당황했어요.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나눔을 계속했는데, 이제 아이들 공감 없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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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1996년 ‘월드비전 기아체험’ 현장, 앳된 모습의 박상원 친선대사, 이문세씨, 노영심씨도 보입니다(오른쪽 사진)

때마침 ‘기아체험 가족캠핑’ 모집공고를 봤어요. ‘애들이 직접 경험해보면 생각이 바뀌겠지!’ 생각에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한테 말했어요. “셋 중 한사람이라도 싫다면 안 갈게. 그런데 가면 힘들거야. 하루 24시간 내내 굶어야 해!”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흔쾌히 가겠다는 거예요. 체험학습이라 학교수업에서 빠질 수 있고, 캠핑이라 들떠서 그랬어요.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됐지요.

갑자기 남편이 못 가게 되면서 물품과 아이들을 제가 챙겼어요. 사실 가족캠핑이 처음이라 텐트, 침낭 등 짐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요. 출발 당일, 그 많은 짐과 애들 데리고 한참 헤맸습니다. 버스출발장소가 바뀐 걸 늦게 봤어요. 겨우 버스에 앉았는데, 더운 날씨에 가기 전부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캠핑장에서  텐트 설치하기도 힘들었어요. 바닥엔 개미가 가득했고 텐트 기둥도 안 세워졌어요. 스태프 도움으로 겨우 설치했는데, 그새 애들은 배고프다며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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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나 저렇게 쉽게 하지……(사진 속 인물들은 글과는 무관합니다)

기아체험 가족캠핑은 하루 동안 난민 생활을 체험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우리 애들은 하루 한 끼도 굶은 적 없고, 한창 자랄 때라는 걸 간과했나봐요. 둘째 딸 목소리에서 짜증이 섞이며 소리가 커졌습니다. 막내는 화장실 급하다고 뛰어갔는데, 재래식 간이 화장실이라 안 들어간다며 다시 왔어요.

다행스럽게도 애들은 하나하나 적응했습니다. 게임이나 임무를 수행하면 물과 간식을 줬는데, 불평등피구 등 애들이 집중하기 시작어요. 게임에서 얻은 감자와 고구마를 불에 구워 먹었습니다. 큰애와 둘째 딸이 열심히 불을 피웠고, 옆 팀 팀장님이 불씨도 나눠줬어요. 불을 피워보니 난민 생활이 실감 났어요. 즐거운 게임과 캠프파이어 후에 아이들은 금방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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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피구 장면

그런데 큰일이 터졌습니다. 난데없이 사이렌이 울리고, 모든 참가자들을 깨우는 거예요. 낮에는 정부군이, 밤에는 반군이 지배한다는 우간다의 상황을 체험하자는 취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이미 꿈나라였어요. 그러다 갑자기 막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벌떡 일어났어요. 아까 안 간 재래식 화장실인데, 어쩌지 하며 신발을 신겼는데 아뿔싸, 그 자리에서 실례를 하고 말았네요.

아..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는데, 순간 난민들의 삶이 이럴 수 있겠구나 생각에 딸을 업고 개수대로 향했습니다.애들을 수습하고 재운 뒤 잠을 청하려는데, 경기도 양평은 생각보다 추웠습니다. 저는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추위에 떨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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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저도 고구마가 작아서…이런 게 난민의 생활이겠구나 싶었어요

아침이 밝자 영양죽 먹기, 물 길어오기 활동이 시작됐어요. 아프리카 아이의 아침을 체험하는 시간인데, 큰애는 일어날 줄 모르고 동생들은 배고파도 죽은 안 먹겠다며 버텼습니다. 맛이 없다면서요. 하지만 아동노동, 문맹 체험, 기후난민 등이 이어지면서 조금 변했습니다. 맛없는 죽을 매일 먹고, 물 길러 가다 납치도 될 뻔하고, 부당한 노동에 대가도 못 받다니 애들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하네요.

하지만, 뜨거운 태양 아래 인내심이 바닥을 보였습니다.’엄마 목말라 죽겠어’, ‘배고파 돌아가시겠어’. ‘내물 누가 마셨어’, ‘왜 내 물병에 입대고 마시냐’ 서로 싸웁니다. 다른 텐트는 조용한데 갈수록 험악해지는 아이들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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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에 마지막 시간 ‘가족 약속’을 작성하는 자리에서 저도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동안 엄마가 직장생활한다며 미안했고, 부족함 없이 해준 것 같은데, 우리 애들이 왜 이럴까’ 뭘 해도 참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책감에 너무 괴로웠습니다. 엄마가 다독이고 격려해줘야 하는데, 저도 한계 상황이 왔던 것 같았어요.

‘내가 여기 왜 왔을까, 우리 아이들은 왜 이럴까’

마음이 내내 힘들었습니다.

에휴, 얘들아 엄마 마음 좀 알아다오….했는데, 두둥! 이녀석들이 가족약속을 이렇게 써왔어요, 어머나…

울던 엄마에게 큰애가 ‘가족 약속’을 내밉니다. ‘어머, 얘들아~’ 읽자마자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너희들도 느낀 게 있었구나, 다행이다’ 저도 감사하기로 했어요. 아이들 때문에 주위 시선이 두려웠던 엄마 모습도 반성했습니다. ‘그래, 엄마가 더 시간을 내서 너희들과 이야기를 나누도록 노력할게’

아이들은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재미있었다고, 또 가자고 합니다. 집에서 체험학습 보고서를 쓰면서도 많은 생각을 나눕니다. 기부 저금통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동전을 다 모아 3만 원을 채워 한 가정을 한 달 살리는 일을 하기로요. 큰아이 이름으로 1:1 후원 신청도 했습니다. 큰애는 며칠 뒤 도착한 아동 사진을 보며 ‘엄마, 내가 이 아이를 키우는 거야’ 즐거워합니다.

작았던 제 생각 이상의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신 월드비전 여러분의 섬김과 배려에 감사드려요. 그런데…

20여 년 후엔 우리 아이들도 지금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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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엄마아빠 마음 좀 알아주겠니, 응? 엄마아빠 믿어도 되지?

아이들과 7년째 참여하며, 아빠도 배웁니다.(최O덕 참가자)

2010년 희망 TV 나눔 축제로 저희 가족 기아체험이 시작됐습니다. 덕분에 저도, 초등학생 두 자녀들도 나눔에 눈 떴습니다. 개도국  아이를 위한 나눔의 소중함, 새로운 나눔의 방법들,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한 건지 깨달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자원봉사센터에 전화해 가족 봉사회에 가입했습니다. 나눔과 봉사의 행복을 경험하기 시작했죠.

이윽고 2011년 5월, 잠실운동장서 열린 기아체험에 제 딸, 학원 제자 한 명과 함께 참여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나눔과 배려를 가르쳐야겠다는 점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기아체험 24′ 홈페이지에서  ‘내가 만드는 기아체험’을 알게 됐고, 2012년 5월, 저희 집에서 같이 공부하는 12명 제자들을 초대했습니다. 아이들 소감문에 눈물지었고, 정말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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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O덕님의 가족들의 2010년 기아체험(왼쪽), 2011년 기아체험(오른쪽) 참여 모습

이후로 지금까지 매년 기아체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체험을 거듭하며 세계시민이 되어가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무엇보다 공부를 왜 하는가의 질문이 없어졌습니다. 늘 성적으로 줄 세우기가 익숙해, 행복은 성적순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게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가족캠핑은 색다른 체험이었습니다. 훌쩍 자라 고등학생이 된 자녀들에게 가자고 말하기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은 올해 기아체험은 가을로 미뤄졌고, 가족캠핑을 대신 봄에 한다는 소식에 아쉬워했지만, 그만큼 관심을 보여줬고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집 국무총리(?)인 아내의 허락까지 받아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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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좌), 2014년(우) 집에서 함께 공부하는 제자들과 함께 기아체험을 진행했습니다

처음 모였을 때, 다른 가족의 어린 자녀들을 보며,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실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6년 전에는 초등학생이었는데 말이죠. 각 가족 자녀들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가족캠핑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불공정 게임’이었습니다. 이 단어야말로, 지금 우리의 굶주림과배고픔의 원인과 현상이라고 느꼈습니다. 한밤중의 ‘나이트 커뮤터’ 체험은 아이들과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낮엔 정부군, 밤엔 반군이 지배하는 우간다 난민 체험=편집자 주) 말로만 듣고 뉴스에서나 보던 사건을 실제 체험하며, 우리는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한 건가 감사가 저절로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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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밤늦도록 활동을 한 뒤, 겨우 잠을 청하던 참가자들을 사이렌으로 깨웠다면…..하지만 난민들은 매일 이런 삶이라는 데서 다들 깨우침이 많았습니다.

이튿날의 문맹, 기후변화, 아동노동체험 등은 몸으로 느끼는 감사한 교육이었습니다. 가을에 진행할 저희 학원의 ‘BOB 기아체험’에 꼭 활용할 것입니다.  행사가 끝나가며 아쉬웠던 동시에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앞으로 교사가 꿈인 두 자녀들에게 이번 가족캠프가 더 소통하고, 이해하고, 함께하는 시간이었기를 아빠 마음으로 바래봅니다. 저도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현재의 아픔을 나누고, 서로 배려하는 세계시민의 길을 안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캠프 준비하신 월드비전 기아체험 24 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행복한 굶주림은 계속된다’는 말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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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초등생이던 아이들이 이렇게 컸어요. 올해 가족캠핑에서.

월드비전 기아체험은 지구촌 빈곤국가 이웃의 삶을 간접 체험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전 세계 월드비전의 나눔 캠페인입니다.

1975년 호주에서 시작해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홍콩, 대만 등지에서 열리며, 한국에서는 1993년 ‘훼민 24’로 시작,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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