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남규리, 희망TV SBS &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에 가다

아프리카는 막연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언젠가 가야지’ . ‘ 가서 좋은 일을 하고 와야지 ‘ 라고 생각했지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을 때에 가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지쳐있던 때, 희망TV SBS와 월드비전으로부터 르완다 방문 제의를 받았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했다.

아프리카! 아프리카!

사실 르완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영화 <호텔 르완다>에서 그렸던 혼란과 감동이었다.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지만 현실과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오랜 기간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SBS 피디님과 월드비전 직원들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설레기도 했지만 나의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짐이 될까 봐 걱정스러웠던 것 같다.

르완다에 도착한 첫째 날에는 공항 근처의 번화가에 있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다음 날 첫번째 가정을 방문하고 나서 르완다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이라 매우 충격을 받았다.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자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가 아이들이 그 가운데서 생활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을 보니,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모습이 꿈인지 현실인지 혼란스럽고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슴 한 구석 고스란히 자리 잡은 아이들

미소가 매력적인 10살 에스페란자. 사랑만 받고 자라기도 부족한 나이지만 에스페란자는 일하러 간 엄마를 대신해 식사 준비와 청소 등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영락 없는 열 살이지만, 주변 사람을 챙기는 모습에서 어른스러움이 느껴져 대견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에스페란자의 선택이 아니라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임을 알고 나니 마음이 짠해졌다. 에스파란자가 입는 큰 옷이 자꾸 흘러내리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내가 입고 있던 옷을 입혀주었다.

남규리씨가 준 옷을 입고 있는 에스페란자

남규리씨가 준 옷을 입고 있는 에스페란자

그리고 부모님 없이 아이들끼리 사는 가드네 삼남매.

가드의 누나는 동생들을 위해 학교를 포기했다.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이 소녀에게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선물했는데 매우 좋아하는 모습에 기쁘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지척에 있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누나의 아픔을 알아서인지 가드는 1등을 놓치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아주 소량의 물로 구석구석 몸단장하는 가드에게서 소년의 파릇파릇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함께 사탕을 먹으며 이야기 하던 가드네 막내 이스마엘이 배가 아프다며 울먹였다. 아이를 안고 병원에 가니 기생충 때문에 생긴 복통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0원 정도면 아이 한 명이 1년 동안 건강검진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데 이마저도 어려운 현실이 씁쓸할 뿐이었다.

의젓한 가드는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

의젓한 가드는 학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

남규리씨의 하얀 송등 실핏줄을 신기하게 만져보는 이스마엘

남규리씨의 하얀 손등 실핏줄을 신기하게 만져보는 이스마엘

눈물은 기쁠 때도 차오르는 것

또 잊을 수 없는 것은 현판식 때문에 하니카 희망학교를 방문했을 때다. 전교생이 밖으로 나와 노래를 불러줬는데, 할 말을 잃을 정도로 황홀했다. 노랫소리와 아이들의 표정 그리고 파란 하늘까지 완벽하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몇몇 아이는 중앙으로 나와 전통춤을 췄는데,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들어가 함께 춤을 췄다. 우리를 위해 이런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도 고마웠지만, 우리의 진심이 아이들에게 전해졌다는 기쁨때문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는 낯선 땅에서 낯선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좋은 마음보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더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내 손등에 퍼져있는 핏줄을 신기하게 만지작거리는 아이들의 손길에서 찌릿함을 느껴졌다.

나를 보던 경계의 눈에 눈웃음이 번질 때 느꼈던 희열 또한 내 인생에서 값진 경험 중 하나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지인들이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힘들었지. 힘들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보낸 그 며칠은 오랜만에 느낀 참 평화였고 힐링의 시간이었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아프리카를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고는 생각에 그쳤다면, 이번 여정을 통해 ‘왜’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돌아와서 기분이 좋은 한편 어깨가 무겁기도 하다.

‘무관심은 또 하나의 폭력’이라는 말의 무게도 체감했다. 착한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르완다가 당면한 과제이며 우리가 아프리카를 도와야 하는 목표다.

르완다를 다녀온 뒤로 그곳 아이들에게 한걸음 더 나아가는 도움을 주고 싶어서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준비가 되었을 때 다시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다.

뜨거운 환경과 즐거운 감사를 전해준 르완다 하니카 희망학교의 아이들

뜨거운 환경과 즐거운 감사를 전해준 르완다 하니카 희망학교의 아이들

[월드비전지 2013년 11+12월호 수록]

글. 남규리
사진. 재능나눔 임다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