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는 여러분을 잊지 않았습니다’
강도욱 월드비전 국제구호팀, 아이티 파견 직원


아이티 1년, 조금씩 전진하고 있습니다

“으으 으으으, 보보부쥬르르~”

오늘도 한 아이가 저를 보자마자 쏜 살같이 달려 와 제 손을 꼭 잡고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소리를 내려 안간 힘을 씁니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진 이 아이를 꼭 껴안고는 “아저씨 다 알아들어. 아저씨가 여기 와서 정말 반가운거지? 행복한 거지?” 라며 아이와 가슴으로 대화를 나누어 봅니다.


참혹한 아이티의 지진 피해현장과 아이티에 마련된 임시 기숙사

참혹한 아이티의 지진 피해현장과 아이티에 마련된 임시 기숙사

제가 있는 이곳은 작년 1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지진이 발생했던 아이티 수도 포트프랭스의 월드비전 장애인학교 재건복구사업 현장입니다.

그 동안 월드비전은 초기 긴급구호, 식량지원사업, 중기 식수위생사업을 진행해 왔으며 마지막 재건 복구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진 발생 당시 이 몬포트(Monfort)학교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현재 아이들은 임시 건물에서 수업을 받고, 텐트를 기숙사 삼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작년 11월부터 현지 교육부와 긴밀하게 협력하여 가장 소외받는 계층인 장애인(농아, 소경)아동을 위한 아이티 최대 규모의 장애인 학교 건축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사업 전 과정에 학교 관계자들과 협력하여 단순 건축 사업이 아닌 직업 훈련, 심리 치료, 아동권리교육, 교사 역량 강화 및 지진대피훈련 등의 교육 역량 강화 부분 또한 계획하여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46년 째 이 학교를 지키고 있는 수녀님께서 저에게 이런 애기를 들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진으로 인해 46년간 간직했던 학교 기록, 학교 건물, 책상, 책 그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제 삶도 무너져 버린 것 같았죠.

그러나 아이들에게 절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이 아이들은 인생을 살다보면 분명 이보다 더한 마음의 지진을 만나게 될 테니깐요. 그래서 지금 절망하거나 두려워하면 너희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마음의 지진을 절대 이겨낼 수 없을 거라고 애기해 주었어요.

보세요! 지금은 월드비전과 함께 꿈과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잖아요.”

수녀님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처럼 환히 웃고 계십니다. 수녀님의 고백처럼 다가오는 8월이면 지진에도 끄덕없는 꿈과 희망을 담은 학교 건물 한 동과 두 동의 기숙사가 이곳에 세워지게 됩니다.

아이티 전역에서 모인 700여 명의 농아 아이들이 이곳에서 함께 꿈을 꾸고 실현해 나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말하지 못해도 듣지 못해도, 그 보다 더 진실한 가슴으로 대화할 줄 아는 몬포트(Monfort) 학교 아이들을 통해 아이티의 미래는 더욱더 밝아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지금도 아이티는 여러 가지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지진 피해 이후 콜레라 발병, 허리케인, 심각한 정치 불안과 주민 폭동이 겹쳐 사회는 무척 불안정합니다.

오늘 포트 프랭스 근교의 지역 마을 보건소를 방문하는 중에 한 여성이 조그마한 물체를 비닐봉지로 감싼채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콜레라에 감염되어 설사와 구토로 고생하던 한 아이가 병원에 옮겨진지 겨우 5시간 만에 하늘나라로 가 버린 것입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이티가 처한 상황을 재앙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후원자님의 사랑이 담긴 월드비전 11개 난민촌에서 이루어지는 콜레라 예방과 대응을 통해 살아나는 생명을 보며, 어쩌면 아이티의 진짜 재앙은 지진이나 콜레라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아이티가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흙 쿠키의 나라가 아닌 혹인 최초 연방 정부를 세웠던 찬란한 아이티, 아이티는 여러분을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