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승 한국월드비전 회장
에티오피아 돌라아도 긴급구호 사업장 방문

월드비전 회장으로 취임한 뒤,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하루를 분, 초 단위로, 쪼개어 쓸 정도로 바쁜 한 해였습니다. 그렇게 분주하던 순간에도 ‘어서 구호현장의 아이들과 주민들을 만나야 할텐데’ 하는 조바심이 있었습니다. 국내와 해외, 월드비전 회장으로 찾아가 만나야 하는 많은 아이와 이웃이 있지만 최악의 현장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구호 현장의 주민에게는 특별한 사랑과 도움이 가장 먼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월드비전이 보완해야 할 사업은 무엇인지, 또 우리의 도움이 효과적으로 적용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며 무엇보다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1월, 에티오피아월드비전 돌로아도 긴급구호 사업장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마른 하늘을 날다.

비행기는 낮게 날았습니다. 바싹 마른 척박한 땅에 보이는 거라곤 금세라도 바스러질 듯한 가시나무 뿐이었습니다. 소말리아 국경과 인접한 에티오피아 돌로아도 긴급구호사업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에티오피아 수도에서 UN기를 타고 두어 시간을 더 가야 합니다. 자동차로 20시간이 넘게 걸리는데다 안전상의 문제로 UN기는 NGO직원들이 이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교통 수단입니다. 15명 남짓의 탑승자 명단에는 다양한 NGO 직원들의 이름이 있었고 저를 포함한 월드비전 직원들의 이름도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국제기구여서 가능한 월드비전의 전문적인 사업효과성과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WFP(UN 식량안전기구) 로고가 박힌 UN 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렇게 마른 하늘과 땅을 날아 돌로아도 긴급구호사업장에 닿았습니다.

죽은 듯이 살아가는 난민의 삶

소말리아 국경과 인접한 이곳은 내정과 가뭄으로 인한 기근을 피해서 온 소말리아 난민들이 난민촌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을 비롯한 수많은 NGO는 난민들을 위한 캠프를 짓고 교육 프로그램과 식수, 생필품 등을 제공하며 이들의 생계와 안전을 위해 노력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가뭄과 기근에 난민들은 그저 죽은 듯 하루하루를 버티어 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내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하지만 절망만이 있을 것만 같던 이 곳에 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라와 가족을 잃고 광야에서 살아가는 난민이나 그들의 눈빛은 반짝였고 아이들은 수줍은 미소를 보여줬습니다. 내일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월드비전은 돌로아도 부라미노 난민캠프 안에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학교를 짓고 직업훈련센터를 세워 재봉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 지어진 학교에는 2,100여 명의 아이가 8개의 반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짧은 영어지만 대답을 곧잘 하던 똘똘한 녀석과 나눈 힘찬 하이파이브에 ”너의 내일을 위하여 우리 모두 더 열심히 달리겠다.”는 다짐을 꼭꼭 눌러담았습니다.

재봉 교실에서 만난 한 여인은 “이렇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니 월드비전에 정말 너무 고맙다.”며 연신 함박 웃음을 보였습니다. 도르륵도르륵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와 간간이 터지는 여인들의 웃음 소리가 척박한 땅을 조용히 흔듭니다.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나을 것이란 희망이 한 뼘 더 자라납니다.

월드비전은 난민 및 지역사회 아이들에게 1만 2,966벌의 교복 및 2만여명 학생들에게 교육 기자재를 전달했다.

월드비전은 난민 및 지역사회 아이들에게 1만 2,966벌의 교복 및 2만여명 학생들에게 교육 기자재를 전달했다.

학교에서는 일년에 약 9,000명이 넘는 아이가 점심을 제공받는다. 점심 급식을 돕고 있는 양호승 한국월드비전 회장

학교에서는 일년에 약 9,000명이 넘는 아이가 점심을 제공받는다. 점심 급식을 돕고 있는 양호승 한국월드비전 회장

35,440명의 난민, 35,440개의 아픔

2012년 돌로아도 난민촌에 등록된 난민의 수는 18만 2,000여명이며 5 개의 캠프에 나누어져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중 우리가 방문한 부라미노 난민 캠프에 등록된 난민의 수는 3만 5,440여 명에 이릅니다. 난민은 모두 소말리아 사람들이며 그 수는 매일 200명 이상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고향을 버리고 가족마저 잃어가며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사연은 모두 저마다 가슴을 내려앉게 합니다. 3만 5,440여 명의 난민에게는 3만 5,440개의 아픔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바스라 할머니에게는 7명의 자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말리아 국경을 함께 넘은 자식은 딸 하나와 2명의 손녀뿐, 남편과 다른 6명의 자식은 생사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할머니와 딸, 그리고 두 손녀가 생활하는 캠프에 들어가자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건 커다란 눈망울이 너무나 예쁜 두 손녀였습니다. 이불 위에 누워있던 아이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방긋 웃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순간 한 아이의 머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상하리만치 부풀어 오른 모습, 아이는 머리에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아이도 척추에 문제가 있어 두 아이 모두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당장 먹고 잠을 잘 곳은 마련되어 다행이지만 할머니와 엄마의 소원은 두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땅을 딛고 서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난민 신분인 아이들을 큰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의료 상황이 열악한 아프리카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밤낮 없이 일하고 있는 데, 정작 이들이 가장 원하는 그것을 해 줄 수 없는 아픔에 마음이 한없이 내려 앉았습니다.

이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난민들은 여전히 너무나 많습니다. 많은 NGO와 정부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한다면 그리고 난민들의 고달픈 삶에 관심을 갖고 사랑을 실천하는 손길이 더 많아진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발전된 도움의 방법이 마련되리라 믿습니다. 그런 날을 만들어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리라, 할머니의 거친 손을 잡고 위로하며 다짐했습니다.

바스라 할머니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하지만 태양열 전구가 들어오고 내리 쬐는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어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이 없어 조마조마했던 할머니의 고통이 조금은 덜어졌다.

바스라 할머니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하지만 태양열 전구가 들어오고 내리 쬐는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어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이 없어 조마조마했던 할머니의 고통이 조금은 덜어졌다.

바스라 할머니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하지만 태양열 전구가 들어오고 내리 쬐는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어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이 없어 조마조마했던 할머니의 고통이 조금은 덜어졌다.

고작 2주 남짓, 현장에 머물렀던 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웃들의 고통을 감히 미루어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월드비전을 비롯한 많은 NGO 그리고 그 일에 기꺼이 동참해 주는 후원자님들 덕분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아이들이 있고, 고달픈 삶이지만 재봉 기술을 배우며 조심스럽게 내일을 꿈꾸는 당찬 여인들이 있으며, 깨끗한 물과 식량을 제공받아 이제 더는 가족을 굶기지 않아도 되는 가장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지만, 또한 변화의 기적을 목격할 수 있는 있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순간 속에서 월드비전은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절대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월드비전과 동행하는 발걸음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돌로아도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아이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가슴 벅찬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고작 2주 남짓, 현장에 머물렀던 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오늘을 살아야 하는 이웃들의 고통을 감히 미루어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월드비전을 비롯한 많은 NGO 그리고 그 일에 기꺼이 동참해 주는 후원자님들 덕분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아이들이 있고, 고달픈 삶이지만 재봉 기술을 배우며 조심스럽게 내일을 꿈꾸는 당찬 여인들이 있으며, 깨끗한 물과 식량을 제공받아 이제 더는 가족을 굶기지 않아도 되는 가장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지만, 또한 변화의 기적을 목격할 수 있는 있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순간 속에서 월드비전은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절대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월드비전과 동행하는 발걸음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돌로아도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아이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가슴 벅찬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월드비전지 2013년 3+4월호 수록]

글. 양호승 한국월드비전 회장
사진. 윤지영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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